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6/22 00:47:05
Name 배도라지
Subject [일반] 사실은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싸이월드 일기장이 어렴풋한 추억 속의 그 무엇이 아니던 시절, 저도 분명히 그곳에 누군가 알아보지 못할 암호문과 다름없는 주저리같은 글들을 많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있습니다. 왜 저는 그런 글을 썼을까요.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을까요.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글들을 알아보기조차 힘들게 썼던 일들은 무엇을 위함이었을까요. 그 이유야 그 시절의 저 자신만 알겠지만 확실한 건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기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부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부류입니다. 그 의도를 가늠할 순 없지만 확실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꼭꼭 숨겨두고 주위의 것만 에둘러 하나둘 꺼내 놓는 경우이지요. 그럴 때 많은 갈등에 휩싸입니다. 제가 그 뜻을 알아 달라는 것일까요? 혹은 제가 그 뜻을 몰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행동일까요?

그러나 요즘엔 비슷한 피로감을 직설이 미덕이라 여김에 망설임이 없던 온라인에서도 느끼는 중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을 제가 유독 최근에 체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요, 실제로 그런 경향들이 강해져 왔을 수도 있고요.

'나는 XX가 좋아요. 혹은 싫어요.' 이보다 더 명확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보다 더 남들이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이해시키기에 명확한 문장이 있을까요. 하지만 최근 많은 글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 대신에 이야기를 대신할만한 이야깃거리들을 주욱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물론 쓰이진 않았지만) 이런 느낌으로 끝나죠.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혀보세요.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 테지만요.)"

조금 더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이 공간에는요. 누군가는 무엇을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무엇을 싫어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무엇을 무조건 사랑할 것이고 누군가는 무엇을 억지로라도 까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다들 이해하시잖아요 그 감정들을? 그리고 (서로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하에야) 그런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리라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조건 쉴드를 치는 글에도 쉴드는 아니지만, 이라는 시작보다는 솔직한 그 심정이. 억지로 까는 글에도 억지로 까는 건 아니지만, 이라는 것보다 그냥 억지로 까는 겁니다 라는 진짜 이유가 드러나는 것이 좀 더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울린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왜냐하면,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포장하고, 또 포장을 벗겨내고 하는 피로감들이 사실은 많은 분들에게는 그 피로감이 '재미'이지만 저만 피로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회에서 또 주위에서 수많은 '돌려 말하기'를 겪으면서 그 피로감이 극에 달해서 느껴지는 '별것 아닌 것에 대한' 아니꼬움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 번쯤 그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드는 부분입니다. 저는 확실히 뜻을 숨기고 빙빙 둘러 이야기하는 많은 이야기가 싫습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조금 더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1/06/22 01:25
수정 아이콘
힘든 일이 있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참 어렵죠. 자신의 실수나 치부가 엮여 있어서, 혹은 자기 약점을 드러내자니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말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이를 말로 풀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일 수도 있구요. 상담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돈 받아가면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1/06/22 08:15
수정 아이콘
자신의 생각은 차치하고 일단 반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환경과 처지에 따라 생각을 그냥 휙휙 바꾸는 사람도 많고요. 펀쿨섹좌처럼 언제든 발 빼고 싶어 말 돌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본인도 본인이 뭔 생각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생각이란 걸 포기한 사람도;;;;; 만나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들이 인터넷 활자에 가려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이 '난 이래' 하고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쉽게, 무섭게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서 무섭더라고요. 피쟐에서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본심을 감출 수도 있죠.
cienbuss
21/06/22 17:11
수정 아이콘
컨텐츠를 원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공감하고 혐오 할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순간 쉴드가 어려워지니 계속 돌려서 말하면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결집하는거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2206 [일반] 나의 편이 없을 때 [5] 지금 우리12721 21/06/23 12721 12
92205 [일반] 7,80년대 슈퍼로봇, 특촬물 주제가 가수 삼대장과 애니송 여왕의 노래들 [8] 라쇼23244 21/06/22 23244 0
92201 [일반] 조선군도 적의 귀를 베었다 - 헌괵에 대해 아시나요? [43] 식별15349 21/06/22 15349 10
92198 [일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뻐보이는 자동차들 [55] spiacente16524 21/06/22 16524 1
92195 [일반] 삼성, 하이닉스를 백악관에 부른 이유 [26] 암스테르담17854 21/06/22 17854 25
92193 [일반] 사실은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3] 배도라지9879 21/06/22 9879 7
92192 [일반] 다른 시각에서 본 92189글 [13] 판을흔들어라13266 21/06/21 13266 9
92190 [일반] 새우튀김 1개 환불해주세요. 쓰러진 분식집 사장님, 배달 시대의 갑질 [77] 나주꿀18647 21/06/21 18647 18
92189 [일반] 한강에 우뚝 솟은 구름 산 [41] 及時雨14130 21/06/21 14130 49
92187 [일반]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군대 무기의 내구성 테스트 [9] 나주꿀15546 21/06/21 15546 3
92186 [일반] 머리가 띵한 오늘자 한겨레 기사,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122] 바쿠닌21422 21/06/21 21422 10
92182 [일반] 넷플릭스 추천 - 고퀄 게임 시네마틱들로 만들어진 쇼가 있다? Love, Death + Robots [33] 흙수저12430 21/06/21 12430 0
92181 [일반] [역사] 에어컨 만든 사람 노벨평화상 줘라 / 에어컨의 역사 [46] Its_all_light97262 21/06/21 97262 19
92180 [일반] 우울증1 (치료 중간보고) [59] purpleonline16686 21/06/20 16686 23
92178 [일반] 7월부터 수도권 식당 12시까지, 소모임 6인까지 등 4단계로 개편되는 방역지침 [206] kapH25721 21/06/20 25721 7
92177 [일반]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 8분동안 작동 안 해 [19] VictoryFood14947 21/06/20 14947 3
92174 [일반] 방랑식객 임지호 요리사님 참 좋아했습니다 [7] 대박났네11090 21/06/20 11090 6
92173 [일반] 포낙 이어폰(Audéo PFE) 기억하는분 계신가요?? [39] copin13475 21/06/20 13475 1
92172 [일반] 완전한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48] lexial14103 21/06/20 14103 7
92171 [일반] 공공기업과 비정규직 문제. [104] 굿샷16304 21/06/20 16304 12
92170 [일반] [팝송] 포터 로빈슨 새 앨범 "Nurture" [6] 김치찌개8834 21/06/20 8834 4
92168 [일반] [웹소설] 연중작에 대하여ㅣ.탑매니지먼트 읽기 시작한 것 을 후회하며.. [55] lexial15016 21/06/19 15016 0
92166 [일반] 이론 물리학은 한계에 봉착한것일까? [33] 이는엠씨투15289 21/06/19 15289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