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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5/13 00:33:42
Name 가마우지
Subject [일반] 아들을 위한 기도
우선 필자는 무교이고, 이 글 역시 종교적인 목적으로 쓴 것이 결코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는 십수년 동안 형님 방에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는, 작은 액자를 걸어두셨습니다.  청소년기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형님과 저는 액자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십대를 마감하였고, 이십대에는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바쁘다가, 삼십대에는 결혼해서 분가해 버렸지요.  

그렇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요상한 것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액자인데도 항상 그 내용만은 마치 익숙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마침내 저도 아들을 낳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이제서야 어머니가 어떠한 마음으로 저 액자를 걸어두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우리나라에서 맥아더 장군이 이렇게 칭송받는지, 그리고 저 기도문이 진짜 맥아더 장군이 한 기도를 옮긴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문과는 별개로, 그리고 종교적인 논란이나 함의를 떠나서, 이 기도문을 아들 방에 걸어두시고 한 평생을 기도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왜 그때는 그렇게 철없이 굴었을까요?  어째서 자식이란 존재는, 직접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여, 저의 자식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신의 약함을 알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하시고
두려울 때 자신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게 하시고
정직한 패배에 당당하고 굴하지 않으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소원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이며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본임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오니
그를 편하고 안락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의 긴장과 자극 속으로 이끌어 주소서.
폭풍 속에서 의연히 서 있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실패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알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목표가 높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웃는 법을 알면서도 우는 법 또한 잊지 않는 사람
미래로 나아가지만 과거 또한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뤄진 후에도 
넉넉한 유머감각을 더해 주셔서
늘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 심각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에게 겸손함을 주셔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함에 있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늘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인 저는 감히
“내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속삭일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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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21/05/13 08:34
수정 아이콘
부모의 마음이란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ㅜㅜ
21/05/13 09:52
수정 아이콘
너도 자식 낳아봐라....이말 정말 자식 낳아놓고 보면 떠 오르더라구요
Grateful Days~
21/05/13 10:32
수정 아이콘
그냥 건강하고, 경제관념박아서 남한테 피해안주는 범위에서 돈벌고 노후걱정없이 살기만 바랍니다.
김연아
21/05/13 11:39
수정 아이콘
그거면 대단히 성공한 인생이죠.
Cafe_Seokguram
21/05/13 13:47
수정 아이콘
민주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1.0인분의 역할을 하며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게 그게 결고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마음 한 켠이 늘 무겁습니다...
21/05/13 16:09
수정 아이콘
저도 그제 우연히 부모님 댁에서
어렸을적 아빠가 사주신
'부끄러운 a학점보다 정직한 b학점이 낫다'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ㅜㅜ)
라는 책을 찾았는데
마침 옆에 8살짜리 아들이 있어서 막 읽어주는 제 모습을 보자니
그때 아빠도 이런 기분일까 싶더라구요~
꺄르르뭥미
21/05/14 10: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희 아버지가 언제 한번 저 기도문을 보고나서 저한테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다른 것들은 모든 아버지들이 다 바라는 것인데 "유머 감각"에 대해서는 당신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생각해보니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니까 꼭 유머감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제 저도 제 아들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쳐주면 좋을지 고민하는 입장이 되었네요.
지니팅커벨여행
21/05/14 12:20
수정 아이콘
며칠 전에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당신은 아버지란게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자식들한테 완전 왕초보인 상태로 아버지가 되셨을텐데 자식들을 이렇게 키워내셨죠.
저도 아이들한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은데 아버지라는 본보기가 있었기에 그나마 덜 불안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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