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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3 17:07
https://www.dogdrip.net/dogdrip/315030937
문종으로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옛날에도 6년상을 끝까지 치루면 그 자체로 초인 및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는걸 보면 3년상이 참 무시무시 합니다
21/05/03 17:11
솔직히 저는 밥도 안주고 미음먹이면서 하루종일 곡하라 그러면 하루 하고 나가떨어질 자신이 있습니다 크크크크
3개월은 커녕 한달하고 병원 실려갈거같아요.
21/05/03 17:16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정도 되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00일 탈상 할때까지 매일 아침 묘자리 쓴곳에 다녀오셨습니다.
편도1시간정도 걸리는 등산 코스인데 3달정도 되니 동네에 소문 다났고 시골 동네라 소식이 빠른지 군청에서 찾아왔습니다...
21/05/03 18:47
논어에서 예전에 읽었었는데, 그냥 나무 위키 긁어왔습니다.
=== 재아가 물었다. "부모에 대한 삼년상은 너무 깁니다. 위정자가 3년 동안 예식을 시행하지 않으면 예식이 반드시 폐기되고, 3년 동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음악이 전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묶은 곡식이 다 할 무렵은 바로 새 곡식이 여무는 때입니다. 불씨를 뚫어 불을 피우는 것처럼 1년이면(期)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니 1년만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물으셨다. "부모 돌아가시고 1년 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 너는 편안하겠느냐?" "편안합니다."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무릇 군자는 상중에는 음악을 들어도 기쁘지 않고 어디를 거처해도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네가 편안하다고 하니 그렇게 해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께서 이르셨다. "여(재아)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 3년은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무릇 부모를 위해 3년상을 치르는 것이 천하에 통하는 상례인 것이다. 여도 태어나서 3년 동안 그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았을 텐데."
21/05/03 18:56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제 수명 깎아먹으면서 침체되는것을 바라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구문 때문에 공자의 사유를 좋아하는데, 역시 공자를 그저 마냥 좋아하긴 힘들군요.
21/05/03 17:41
갠적으로 삼국지에 대해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마다 원소가 조조보다 못한 게 인재 보는 눈이라느니 자존심이라느니 삼남사랑이라느니 하는 건 다 결과론이고, 걍 조조보다 건강관리를 못해서 일찍 죽은 거때문에 역사의 패자로 남은 것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오히려 원소 죽고 나서 6년 뒤에, 그 당시 원소보다 더 세력이 안정되고, 더 압도적인 상황인 조조가 적벽대전 후에 급사했다면 과연 멀쩡히 조조의 세력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군에 기반이 있는 조창이 들고 일어나면서 조비vs조창 구도에 허도에서도 조식파가 나오고 슬금슬금 한실부흥파도 고개를 쳐들고 서량에서 쳐들어오고 손권이 합비 들어오고 난리 났을 것 같은데 말이죠. 만약 그래서 조조 세력이 확 주저앉았다면 후세 사람들은 조조가 인재를 보는 눈이 없었다느니 자만하는 성격이었다느니 하면서 까내렸겠죠. 결국 원소를 까내리는 것도 결과론이 50%라고 봅니다. 만약 한창 젊은 시절에 6년을 저런 게 원소의 수명을 갉아먹은 거라면... 뭐 그걸로 떴으니 그거로 몰락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운명이겠네요.
21/05/03 18:19
[조조가 적벽대전 후에 급사]
코에이 삼국지 가상 시나리오중에 이런 시나리오도 있었죠. 말씀하신대로 조비 조창 조식에 뜬금없이 조웅까지해서 넷으로 갈라지고 갑자기 땡기네
21/05/03 21:12
동감합니다... 글치만 건강도 능력이라... 체사레보르자 알렉산드로스 문종 .. 제갈량 .. 스티브잡스... 등등 건강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죠
21/05/03 18:10
상복 중에서 남자는 수질首絰을, 여자는 요질腰絰을 푼다. 이어서 25개월째, 즉 만 24개월이 지나면 대상을 지낸다. 이때는 수질과 요질을 태우며 상장喪杖을 버리고 탈상脫喪한다.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215 이런거 보면 그냥 남녀구분없이 했나봐요
21/05/03 18:33
부모가 죽으면 슬픈 게 당연하지 그런 것까지 남들에게 보여지는 걸 신경쓰게 만드는 게 무슨 예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어? 근데 혹시 옛날 중국인들은 부모가 죽어도 안슬펐나? 그래서 저런 걸 만들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네요.
21/05/03 18:45
원소가 6년상을 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단 글 보고 어렸을때 요즘하는 상 그정도로 생각하고 와 그걸 6년을 해? 대단하다;; 이랬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초인이네요 와.......
21/05/03 18:53
나무위키보니까 이 부분이 정말 소름돋네요.
그니까 상을 치를 때는 살기 위해 하는 행위는 다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배고파? 걍 참아. 추워? 걍 참아. 아버지 상치를 때 아들이 추워하자 어머니가 뭘 덮어 줬는데 그것도 못하게 했다네요. 심지어 가족이 도와주는 것도 안되는 겁니다. 침국지 보면 진수가 상 치르다가 몸이 축나서 약 해먹었다고 욕 했다는 게 무슨 이야긴 줄 이제 알겠네요. 주변에선 "이놈이 진짜 이거 버텨내나" 다 감시하고 있는 것이고요. 원소는 명문가여서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는데 그거 다 버텨내고, 심지어 가족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거 다 쳐내고 더블삼년상 고고한 거
21/05/04 00:07
하등 쓸모없는 유교가 지배해서 그렇다기에는
상당한 문명수준을 자랑했던 송나라는 유교국가이자 성리학의 발상지인데요. 오히려 식민지 작살내면서 발전한 서양보다는 상대적으로 평화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군사력 쪽이 아쉬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몽고 주력군 상대로 가장 오래 버틴 국가중 하나고요. 그 몽고에 멸망하고 문명 수준이 퇴보했다는게 좀 크지만
21/05/04 02:55
송나라가 상당한 문명 수준이래봤자 전근대 문명 수준을 못 벗어났죠. 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도 경제적으로 좀 낫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특출난 수준도 아니죠.
그리고 무엇보다 송나라가 가진 장점들이 인구과 지리, 자원에서 비롯된거지 성리학과는 별 상관이 없죠. 평화적으로 발전한게 무슨 장점이란건지 모르겠네요. 세상은 힘 없으면 밟힘니다. 송나라 내내 외적에 당하다가 멸망한 것 처럼요. 초월적인 힘이 있는데 투사를 안한게 아니라 힘이 부족한거였죠. 송나라 시기는 서양 열강 시기도 아니고요. 남송이 몽골 막아낸 것도 몽골이 수전을 못해서죠. 고려도 강화도에서 막아냈고, 일본도 못 쳐들어갔고, 인도네시아도 침공 실패했죠. 몽골 가기전에 북송부터 금나라에 털렸죠. 평화적인거랑 성리학이랑 아무관계도 없고요. 유교 국가들이 전쟁 터부시하는 것도 아니고요. 애초에 송나라 수준은 시기의 문제지 유라시아 수준의 지리적 이점이면 어디든 도달했을 겁니다. 성리학 기반 국가던 기독교 국가던 이슬람 국가던지요. 하지만 근대 문명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관점과 그로 인한 인본주의-상업주의-과학기술 발달 등이 어울어지지 못하면 절대 못 도달할 겁니다. 유교의 유효시기는 18세기 초 정도였죠. 다음 테크로 못 넘어간 시점에서 올드한 체계이고 다음 테크의 발판이 못 되는 막힌 테크 였다는 점에서 감점이죠.
21/05/04 17:57
대체로 맞는 말씀이긴 하나, 근대 이전에 유교가 이룬 성취를 간과하신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인구규모와 지리 여건을 지닌 인도가 완전한 통일을 식민지 때서나 이룬거와 비교해본다면, 유교가 중화문명의 통일과 안정,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또한, 서구 사회와는 분명 다르지만 유교의 (괴력난신은 믿지 않는다는) 합리주의, (신이 아닌 인간에 주목하는) 인본사상, 그리고 체계화된 관료제와 군신공치 사상, 학문적 인프라(서적 간행, 식자층 규모) 등은 이후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내재화하는 나름의 토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대 동아시아 사회가 서구 사회와 차이가 생기는 부분은 유교라는 역사적 맥락과 배경이 작용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유교가 하등 쓸모없었다는 말씀은 약간 지나친 말씀 같습니다.
21/09/26 19:16
링크타고 왔는데 이런 웃긴 리플이 크크
동양이 만약 서양을 앞지르는 시대였다면 혹은 앞으로 앞지른다면 서양 문화의 미개성을 논하고 있겠죠? 다른 열강을 모두 제치고 현재 세계 2위가 된 중국이 괜히 서양의 민주주의나 사회시스템을 깔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딱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 '너희가 그렇게 훌륭한 체제를 가졌다면 왜 우리에게 뒤쳐지는데?' 딱 이 마인드 크크
21/05/03 19:21
열녀문같은거랑 비슷한것같아요
몇몇이 그렇게 진짜 해버려서 고된만큼 도덕적 명예적으로 올려쳐지니 후대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억지로 따라하게된달까...
21/05/03 19:22
동기부여의 중요성 같네요.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든 안하고 싶어하고 진짜 슬퍼서 하는 사람은 슬퍼하다 죽게되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든 이겨내서 입신양명을 하겠다고 이를 악문 원소..
21/05/03 19:41
친부모도 했지만 키워준 유모도 삼년은 아니지만 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도 그렇게 상 치를 일이 많아서 신하들이 '고기 좀 드십쇼' 라고 많이 말했다더군요
21/05/03 19:45
이게 유학에서도 간소화시키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닌데, 시도할때마다 사문난적이니 금고형이니 쳐맞기 바빠서 결국에는 타협했는지라...
21/05/03 20:16
참.. 공자는 어떤 제자가 아버지한테 죽도록 얻어맞고도 악기를 연주해줬다고하니
아버지가 죽도록 팰거 같으면 도망쳐야지 왜 얻어맞냐고 내쫓았던 적이 있는데(크게 다치면 아버지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3년상에는 왜 그런 융통성을 발휘 못했는지...
21/05/03 20:34
시대상의 한계겠죠. 춘추전국시대는 인륜이 막장으로 떨어지던 시기라 부모가 부모대접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공자가 이상향으로 보는 주나라 법도가 3년상이었고 위에도 언급 됐다시피 부모가 3년이나 자식을 키워줬으면 자식도 부모의 삼년상을 치루는게 최소한의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한거겠죠. 증삼에게 꽉막힌 효라고 나름 융통성을 보인 공자는 정말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라고 생각했을거 같아요. 그게 건강한 장정도 쓰러지는 고행이라도 말이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갈 행동이아니죠.
21/05/03 20:41
삼년상은 진짜,, 신하가 임금에게 딴맘먹게하는 빌미도 되는것 같아요, 문종을 봐도 그렇고,,,'
삼년상이 또한,,, 온전히 장자가 부모의 세력을 받지 못하게끔,,,심신건강을 약하게 하는것도 있는것 같고,,, 여러 사회적 견제장치 같아요.
21/05/03 20:47
사실 왕이 삼년상 fm으로 하는거 신하들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문종 인종이 효심이 지극해서.. 좀만 불효하지..
21/05/03 21:20
세종대왕님의 문제점을 굳이 꼽아 보자면 바로 그거죠.
본인이 할만 했으니 남들도 그럴 거라고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 아들이 FM을 다해버릴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그런 안배를 안하지 않았나 하네요. 또, 자신의 형제들이 우애가 워낙 좋다보니 그런 후계구도를 크게 신경 못써서 수양, 안평이 세력을 쉽게 만들 수 있었죠. 정작 본인의 아버님은 형제간에 칼부림 하다보니 자식들에게 우애를 강조했다고 하던데...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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