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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밤 12시에 버스가 출발을 해야 봉정암으로 가는 시간이 맞다고 해서 4시간정도 템플스테이방에서 휴식을 취한뒤 자정무렵
우리 일행은 이제 봉정암으로 향했다.
가는길에도 내내 잠을 잔거 같다 중간에 한두번 휴게소에 들른거 말고 거의 비몽사몽이었는데 새벽 5시가 되자마자 회장보살이
버스안 tv로 불경비디오를 틀어서 다들 깨었다. 그리고 회장보살이 불경을 읆고 중간중간마다 다들 관세음보살을 되뇌이며 앉은채로 합장을 계속 하였다.
불경비디오가 끝나고 나서 나는 회장보살에게 가서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회장보살은 엷은 미소를 띄고는 말했다.
'부처님은 삼보 중의 첫째이고 불교의 시작이기도 하고 완성이기도 하지요.'
부처님은 처음으로 깨달은 자이기도 하고 홀로 깨달은 뒤에도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도록 보살피기도 하답니다.'
회장보살의 말은 선문답같아서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두웠던 차창밖은 새벽동이 터서 슬슬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회장보살은 마이크를 잡고 불교의 고통에 대해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번에는 중생이 겪는 여덞가지 고통중에 생로병사에 관하여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나머지 네가지중에 구부득고에 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구부득고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인데 지금 자본주의 속에서는 가장 커지는 고통이 바로 구부득고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끝없이 소유하고 부를 누리고 소비하는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볼때마다 우리는 끝없이 가지고 싶고 무한하게 소비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수 없어서 늘 물질적으로 빈곤함을 느끼고 더더욱 돈을 많이 가지고 싶고 소비를 원없이 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립니다.
구부득고는 바로 이 우리가 얻지 못하는 고통이 우리의 마음속에 얻고자하는 욕망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 욕망의 산물이 바로 구부득고이고
그 욕망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구부득고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많이 소유하고 가진 사람이 마음속이 풍요로울껄로 착각하지만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구부득고에 더욱 시달려 마음속 빈곤이 더 크고 늘 불안에
시달립니다. 많이 가지건 적게 가지건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내 마음속 소유에 대한 욕망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 결국 진정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겁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뭘 많이 가지고 싶은 것보다 단지 게임을 하면서 가끔씩 잘했을때 오는 성취감 좋아하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비비큐 황금올리브 치킨을
먹고 싶을때 먹는 그때 온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만족함을 느끼는데 그럼 나는 구부득고가 없는것일까? 그럼 나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네??
아니지.. 나는 잘나가는 친형을 볼때 친형이 형수를 데리고 처음 집에 인사를 온날 마음속으로 빈곤함을 느꼈던거 같아.
나도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멋진 수트를 입고 대기업사원증을 목에 당당히 걸고 아름답고 세련되고 지적인 여자와 깊은 사랑을 나누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은 그런 일종의 소유욕이 늘 마음 한켠에 있지 않나?
뭔가 이루어지지 않는 봄날의 스쳐지나가는 그런 꿈같은 상황 그래서 현실에서는 구하지 못해 더욱 고통스러워 하는 방구석 히키코모리 생활중인 내 모습이 바로 구부득고에 시달리고 있구나.
현실을 자각한 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회장보살의 말이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는 어느새 봉정암으로 가는 입구인 백담사에 도착했고 아침해가 다 떠서 밖은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백담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등산하기에도 엄청난 난이도인 설악산 소청봉까지 공양물을 메고 어떻게 올라가지? 중간에 완전히 퍼지지 않을까?
설상가상으로 기사님들은 산을 안올라가시고 산 반대편에서 우리가 내려올때까지 하룻밤 숙박하고 나서 기다린다고 했다.
짐을 운반할 남자는 나밖에 없는것이다.
천만다행으로 회장보살님이 산에 가지고 올라가는 공양물은 간소하다고 했고 조그만 보자기하나가 전부였다.
일단 한시름 놓았다. 가방안에 공양물 보자기를 넣고 우리는 봉정암으로 향하기 위해 백담사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하얀돌이 많은 큰 백담계곡 사이사이로 물이 너무 맑고 시원해 보여 마음속까지 청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백담사도 자장율사가 세웠고 원래 이름은 한계사였는데 불타서 소실되었고 이후 다시 짓고 불타고 다시 짓고 불타고를 반복을 무려 8번을 하였는데
마지막 6.25전쟁때 불탄것을 1957년에 다시 세운게 지금의 백담사라고 한다 백담이란 백개의 연못에서 기원해서 백담사고 내기억속에는 어렸을때 전두환대통령이 백담사에 갑자기 영부인과 함께 가서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강한 절이다. 8번이나 완전히 불타서 잿더미가 되어도 계속 다시 복구하는 이절의 생명력은 실로 대단하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백담사를 지나면서 회장보살이 여기가 정식스님이 되기위해 승가고시라는 시험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승가고시 난이도를 이야기해주었는데 작은 방안에서 밖에서 넣어주는 생명만 연장하는 수준의 식사만 받으면서 3개월동안 갇혀서 승가고시를 준비를 하는데 난이도가 실로 무시무시해서 아무리 해도 안되서 결국 정식스님을 포기하는 예비승들도 많다고 했다.
정말 신기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냥 절에가서 속세와 연을 끊고 스님이 되겠습니다라고 해서 아래부터 심부름하며 목탁만 두드리면 저절로 스님이 되는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5급승가고시 4급승가고시를 거쳐야 진짜 스님으로 시작되고 그리고 각자 전공분야에서 전문성을 갈고 닦아서 다시 3급승가고시2급승가고시에 도전해 합격해야지 어디가서 인정받는 스님이 된다고 해서 신기했다.
약간 유유자적 산속에서 불경을 읆으면서 쾌적한 공기속에서 건강하고 심심하게 사는 일종의 그런 스님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는 매우 치열한 평가와 경쟁이 사회보다도 더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전까지 생각하던 이미지의 백담사는 권력자나 부자들의 시주를 받는 그런 일종의 불교판 소망교회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식스님이 되기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예비승들이 있는 그런 신성한 불교교육기관인줄은 처음 알았다.
그래서 전두환대통령이 그영부인과 여기에 왔던걸까? 알수없는 일이었다.
백담사를 지나 드디어 봉정암으로 향하는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등산은 지난한 과정이다 지루하고 지루하고 저기까지만 가면 희망이 있을꺼야 하면 거기 가면 또다른 고지가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젊은 남자라는 자존심때문에 말은 못했지만 같이 같던 일행들은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부인들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산을 슬며시 잘올라가는지
나혼자 힘든과정속에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특히 회장보살은 산을 자석이 끌고 올라가듯 부드럽고 꾸준하게 올라갔고 나는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힘들게 올라갔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약 10키로 정도 되는 코스였는데 설악산중에서는 평탄한 코스라고 했다.
중간중간 쉴때마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이대로 그냥 계속 앉아있거나 누워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느덧 계속 반복되는 걸음의 리듬에 익숙해진 나는 힘든것보다 슬슬 잡생각이 나기 시작했는데 땀을 흘리면서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집의 골방에서 박혀있을때와는 다른 뭔가 나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아까 버스안에서 보살회장에게 들은 구부득고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겪고있는 마음 한켠에 늘 무겁게 있는 고통은 바로
일단 내가 좋은 직장에 취직에 성공하고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뭔가 근사하게 신사적으로 사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해서니깐 그것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해서 하나씩 충족시킨다면 구부득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건 아닐까?
돈도 많이 벌어야 정말로 내가 하고 싶거나 사고 싶은거 맨날 편의점에서 사고싶은 과자도 못사고 최대한 싸구려 과자와 싸구려맥주를 사게 되는데 초봉 3500
이상되는 좋은 직장에 가면 편의점에서 돈 걱정하지 않고 비싼 몽쉘통통과 호가든캔맥주 이런거 사서 플렉스할수 있을꺼 같은데 그리고 한번씩 드라마에 나오는
근사한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한 BAR에서 혼자 세상의 고독을 씹으며 고급 양주를 마실수 있을텐데 그럼 나는 구부득고에서
해방되는거네?? 이런 여러가지 상상을 하면서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봉정암에 거의 도착했고 시간은 오후 4시가 되었다.
봉정암은 높고 험한 설악산 소청봉 바로 밑에 위치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해발 1244m에 있는 무시무시한 암자로 여기는 진짜 적멸보궁 본연의 기능으로서는 제대로 수행하겠구나 싶은 천혜의 험지에 꽤 규모가 큰
암자가 있다. 어떻게 이 높은곳에 이런 규모의 건축물을 지었는지 신기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봉정암의 주법당은 1989년에 불교와 전혀 연관이 없을꺼 같은 미군이 헬기로 목재를 운반해줘서 이 높은 산속에 큰 법당이 꽤나 수월하게 건축할수 있게 되었으며
그래서 특이하게 봉정암 적멸보궁의 대공덕주는 한미연합사령관 메네트리 장군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메네트리 장군은 머나먼 작은 분단국가의 부처님 사리를 수호하는 적멸보궁을 짓는데 큰 대공덕주로 참여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할수 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그런지 아니면 높은 산속이라 그런지 기온은 빠르게 떨어졌고 봉정암에서 우리 일행을 마중나온 스님과 인사를 한뒤 스님이 방을 안내했다
일행들은 다 여자라 다른 방으로 가고 나는 혼자 남자라 미리 예약된 봉정암남자쉼터에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방에는 선이 그어져 구역이 나누어져있었고 몇평안되는 방에 몇십개의 40*120의 네모칸이 그어져있었고 각 칸에는 숫자가 쓰여져 있었다.
잠을 잘수가 없고 그냥 앉아서 쉬게끔만 되어있는 구조였다. 밤이 어느새 다가와 오늘 여기서 하루밤을 자야하는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짐을 풀고 공양물 보자기를 들고 우리일행은 스님의 안내를 받아 봉정암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봉정암의 적멸보궁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위에 있는 구조였다 설악산 소청봉 바로 밑 단단한 바위위에 굳건히 서있는 사리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모셔서
지혜의 기운을 받으러 수능때가 되면 이곳 봉정암 적멸보궁에는 전국의 불자 수험생어머니들이 몰려서 기도를 드리는 진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적멸보궁에서 예불을 마친후 다른일행은 방으로 쉬러가고 회장보살은 나를 데리고 봉정암을 여기저기 구경시켜주었다.
그중에서 봉정암 한곳에 산신각을 구경시켜주었는데 거기서 회장보살은 이게 바로 한국 불교의 상징이다라고 하였다.
초기에 한국에 불교가 들어왔을때 그때 먼저 자리잡고 있었던 토속신앙이나 여러 동물이나 산의 신을 믿는 종교들과 불교는 싸우지 않고 서로 한데 어우러져서
평화롭게 같이 공존한 것이 바로 이렇게 적멸보궁안에도 산신각이 있을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봉정암에서 저녁을 먹고 쉼터로 왔다 아까는 분명히 쉼터에 몇명만이 있었는데 방안에는 등산객들이 가득 있었다.
원래 봉정암은 법당에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만 예약을 받지만 설악산 쉼터가 예약이 실패한 등산객들이 꼼수로 봉정암에다가 예약을 했던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등산객들 사이에 내 번호에서 가방을 뒤에 놓고 앉은채로 쉬려고 했는데 도저히 앉은채로는 잠을 잘수가 없었고 좁은 방안에 가득찬 등산객들의
각종 발냄새 몸냄새 체온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작은 지옥도가 펼쳐졌다. 답답해서 밖에 나가면 해가떨어진 산속의 밤이라 엄청나게 추웠고 금방 방으로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고통스러운것은 가로 40센치 세로 120센치인 내 구역에 자꾸 옆에서 아저씨들이 밀고 들어오고 다리가 넘어와서 내 작은 공간이 조금씩 빼앗기는것이었다. 정말 마음속으로 온갖 분노가 치밀어올라서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예민해져서 쉴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하나 이여행을 기획한 어머니에 대해서 짜증도 나고 밖은 추워서 나갈수가 없었고 참 난감했다.
새벽2시쯤 되었나 방안에서는 여기저기서 구역을 서로 침범했다고 말다툼도 나고 분위기는 매우 안좋아져있었는데 갑자기 두명의 중년등산객들이 배낭을 들고 우리 둘은 옷도 따뜻하니 방밖에서 밤을 샐테니 두사람분의 공간에 짐을 다 몰아놓고 편하게 쉬라고 하며 그 중요한 공간을 양보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어떻게 이 힘든 설악산을 올라와서 유일하게 쉴수 있는 공간을 양보를 할 수가 있는거지?
방안은 다시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아까까지는 서로 일촉측발 말다툼을 나누던 등산객들도 어느새 공간이 넓어지고 편하게 쉴수 있게 되자 이런 저런 평온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나는 부끄러움을 참을수가 없었다. 화장실을 가러 방밖으로 나갔는데 그 멋진 등산객 두분은 추운 밖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 밤을 새우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을 갔다와서 이상하게 마음이 동요되어 봉정암을 한바퀴 돌고 들어가기로 했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가보니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서 늙은 여인이 간절하게 울며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이 새벽에 왜 그렇게 울며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궁금해서 조용히 그 뒤로 갔다.
늙은여인은 말했다.
'영험하신 부처님 제발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평생 고생만 하고 이제 병이 들어 죽어가는 우리 불쌍한 엄마를 살려주세요 영험하신 부처님 제발'
늙은 여인의 기도는 너무 처량하고 간절해서 말 한마디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파는 거 같았다.
순간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늙은 여인의 소원이야말로 진정한 구부득고이구나.
함께 있을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부모님의 존재가 이렇게 이별하려 할때에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수 없게 되는 그런 구부득고의 마음이 되기도 하는구나.
저 여인의 간절한 마음은 어디로 전해지는 걸까.....
다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방밖에는 아직도 그 두명의 등산객이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피곤할텐데 표정은 평온하고 어른스러웠으며 뭔가 내가 꿈꾸던 그런 멋진 신사같은 사람들이었다. 저 얼굴의 미소가 염화미소 그런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어린시절 보았던 만화였다.
전래동화를 만화로 만든거였는데 엄청 어렸을때 본 한국 고전이야기를 만화를만든거였다.
엄마가 아파서 죽자 간절하게 기도를 해서 어디 돌로 된 동굴속으로 들어가자 죽은 엄마가 시냇물에 떠내려왔다.
그 동굴속에는 하얀액체가 든 병과 빨간액체가 든 병이 있었는데 하얀액체를 붓자 엄마의 몸속에 뼈가 다 만들어지고 빨간액체를 붓자 엄마의 몸속에
피가 돌기 시작하고 하늘에서 빛에 내려오니 다시 엄마가 건강한 모습으로 주인공과 만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니 벌써 아침이었다. 두 멋진 등산객덕분에 잠을 잘 잔것이었다.
그 두명의 등산객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으로 가득찼다.
적멸보궁 여행만 다 마치면 엄마에게 효도를 제대로 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야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온몸에는 희망찬 기운이 샘솟았다.
우리 일행은 봉정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소청봉을 거쳐서 설악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한 구부득고에 대한 해답은 이것이었다.
구하고자 해도 구할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은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해 마음의 욕망을 계속 증폭시키는 것이니 그런것은 지양하고 당장 내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인 가족과 내 몸 내마음을 가장 소중하게 대하면 이미 가지고 있는 귀중한것을 잘 지키는것이니 뭔가를 가지고 싶어서 욕망에 허덕이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설악산을 내려가는 내내 방안에서 오랫동안 비관에 잠겨서 마음의 체력이 고갈되었던 내가 이상하게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되어
이 세상 모든것을 할수있을꺼 같은 용기로 가득차는 것이었다.
담편에 또 쓰겠습니다 글쓰는 체력이 저질이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