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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4/04 18:53:08
Name Aiurr
Subject [일반] 억울했던 일 하나. (수정됨)
안경을 끼면 삼백안 등의 옳지 못한 면상이 상당 부분 가려지는 탓인지, 시비도 자주 걸리고 겸사겸사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시비걸렸을 때의 루틴(?)이 하나 생겼는데, 안경을 벗고 상대를 바라보며 머리 한 번 뒤로 쓸어넘기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한두 건을 제외하고는 이 루틴으로 대부분 해결되었고, 손에 꼽는 억울한 일은 바로 이것으로 해결되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특별한 억울한 일'들에는 또 이질적인 '억울한 일'이 있기도 한데,
훨씬 옛날,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었던 억울한 일을 아래 적어보겠습니다.

* * *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이 그렇듯, 어렸을 적의 저도 하나의 분야에서 영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학 영역에서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학원 수학 강사와 대판 싸우고 수학을 던져버릴 때까진 수학 시험에서 두 개 이상 틀려본 적이 없으니
능력과 취향이 제법 잘 어우러진 저는 영재 타이틀을 달았어도 크게 모자람이 있지는 않았으리라 변호해 보겠습니다.

각설하고,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서 입학한 초등학교였습니다만, 제출한 수학 숙제가 대부분이 틀려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를 확인한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이 천재일지도 몰라!'라는 기대감이 깨지셨나 봅니다. 뒤이어 어머니께 엄청나게 맞게 되었으니까요.
어머니의 훈육(?)이 올바른지는 별론으로 하고, 저는 제가 무엇을, 왜 틀렸는지 알 수 없어 난생 처음 극도의 스트레스와 억울함을 느꼈구요.

그렇게 뚜드려 맞은 저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그사이 떠들기 좋아하는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지적 장애가 있는 것 같다며 작은이모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영특함(...)을 알고 계셨던 작은이모는 의아함을 느껴 검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곧곧의 병원에 찾아가 다양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에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났는데, 제가 적록색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어 절반 이상이 틀린 수학 숙제가 무엇이었냐 하면, [파란 유니폼, 빨간 유니폼, 초록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숫자를 세보세요.]였습니다.
당시의 열약한 교과서 인쇄 품질과(선명하게 인쇄되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적록색약이 어우러져 이런 불상사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알아보니 외삼촌도 색약이었고, 외가쪽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들은 모두 보인자였습니다.

* * *

당시 얼마나 억울하였는지, 서른 넘은 지금도 수학 교과서 해당 페이지의 구성과 어머니의 싸늘한 태도가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요즘도 틈틈이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우리 엄마 같은 부모는 되지 말아야 겠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여자친구도 없는데 자식이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군요.

치킨 배달 오기까지 살짝 짬이 나 적기 시작했는데, 더 쓸 것도 없고 치킨도 막 도착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교촌에서 신화치킨을 시켰사온데, 분기에 한 번씩은 찾게 되더라구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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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4 18:59
수정 아이콘
연배는 모르겠지만 저희 아버님도 색약이시라 남일 같지는 않네요 크크

저희 아버님 세대때는 면허시험도 못보게 했다 그러시더군요.

환갑때 엔크레마 안경 사드렸습니다.
조말론
21/04/04 19:06
수정 아이콘
이런 에피소드를 듣고 보면 정말 아이를 기를 때 정말 감정적으로 언행하지말고 조심히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신화치킨 뭔가 이름만 들어도 매울거같네요
서쪽으로가자
21/04/04 19:07
수정 아이콘
예전에 색약이었던 한 친구는,
색맹검사할때 제대로 안 한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
피잘모모
21/04/04 19:07
수정 아이콘
저도 색약이 있어서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이거 무슨 색으로 보여?" 라는 질문을 수도없이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흐흐...
동경외노자
21/04/04 19:46
수정 아이콘
치킨 뒷광고인가여 치킨 땡기네여
양파폭탄
21/04/04 20:07
수정 아이콘
아버지가 적록이신데 저는 정상이라 다행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21/04/04 20:24
수정 아이콘
색맹인가 색약인가 때메 설대의대 떨어졌다가 절 만난 예여친 생각이 나네요
호머심슨
21/04/04 20:59
수정 아이콘
정성스러운 치킨광고글
농담입니다.
21/04/04 21:46
수정 아이콘
아이 때 당한 억울함은 성인이 돼서도 다 기억나죠. 시간 지난다고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저도 비슷한 억울한 기억들 꽤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초등학교 선생들..확실히 아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판단하기보단,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21/04/04 23:35
수정 아이콘
예전엔 정말 색각이상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했죠. 저도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색각 검사를 했는데 남들 다 읽는 숫자를 저만 못 읽어서 무척 치욕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선생이 저를 숫자도 못 읽는 애 취급을 했거든요. 그때 반 친구들 앞에서 겪었던 그 수모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생생합니다.
개좋은빛살구
21/04/05 17:42
수정 아이콘
저도 친척동생들 3명이 전부 초록색을 붉은색으로 보는데,
같이 게임하다가 "얘들아! 초록색으로 뛰어!" 하는데 전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색을 저랑 다르게 본다는걸 알았고 한동안 제 눈이 잘못된줄 알았습니다.
4명중 3명은 같은색으로 보고 있어서 제 눈이 잘못된줄 알았었습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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