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럽을 피라미드처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그 정점에 독일을 두겠다는 야심 찬 독일의 의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유럽의 재건에 대한 독일의 태도를 파악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으로 등장했고 베르사유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국제질서가 이제 종말을 고했으며, 국민국가가 자신의 자리를 훨씬 큰 규모의 정치체에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주: 당시 유럽에서 러시아나 미국 혹은 대영제국 같은 대륙사이즈 국가들에 맞서 대륙단위로 유럽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어제까지도 독일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들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유럽을 위계적으로 조직한다는 개념 그 자체를 수용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독일인들과 만나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유럽 질서를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유럽을 조직한다는 것을 곧 어떤 광물을 얼마나 생산하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어떤 경제 질서도 정치 질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독일인들은 모르고 있다. 벨기에와 보헤미아의 노동자들을 일하게 하려면 높은 임금을 약속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공동체, 즉 그 자신 역시 속해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942년, 3월 14일. Mario Luciolli (이탈리아 외교관)
오늘날의 독일도 사실 저때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적어도 유럽연합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말이죠. 독일은 유럽연합을 순전히 경제적 논리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 있어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합니다.
경제질서 위에는 정치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한 저 이탈리아인의 통찰은 실로 중요합니다. 특히 유럽연합이라는 맥락에서는 더욱 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독일 역사에서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이념이나 정치적 프로젝트는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독일인으로 자란 마르크스가 제창한 <공산주의>겠죠. 하지만 독일에서 태동한 공산주의는 단 한번도 국가차원의 신념이 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러시아 특유의 "정교회적-제3의로마적 세계관"으로 "메시아적인 국시"로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기계적 경향"은 나치 때나, 오늘날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현상인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