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일반 대중이 흔히 아는 진화론의 개념을 뒤집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은 절묘하게도 그 제목 <이기적 유전자>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이기적'이란 말과 '유전자'라는 말 각각에요.
Q.이기적인 것은 무엇인가?
A.자기복제 확률을 늘리는 것에만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Q.진화론에서 '이기적이어서 자기복제를 거듭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진화하는 단위'는 무엇인가?
A.생물 개체가 아니다.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는 한 세대만 지나도 이전 세대의 특성이 반으로 쪼개진다. 손주 세대가 되면 조부세대와 유사성이 더욱 달라진다.
이기적인 단위는 '유전자'이다. 생물 개체는 유전자들의 연합체에 불과하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개념을 논증해 나가서, 그는 탁월한 생물 저술가로써 이름을 알립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진화 개념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입니다. '자기복제를 위한 이기성'과 '개체가 아닌 유전자 단위' 개념은 꼭 생물학에서만 적용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그는 <이기적 유전자> 말미에서 자기자신을 재생산해내고 진화해가는 문화적 유전자로써 [밈(meme)]이란 개념을 제안합니다. 그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단어인 '미메시스(Mimesis)'와 유선사를 뜻하는 '진(gene)'의 합성어입니다. 그는 이 개념의 도입으로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분석이 생물학처럼 정교하게 되지 않을지 조심스런 기대까지 내비쳤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적어도 제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이런 개념이 사회문화 분석에 도입되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반복적나오는 유행 소재나 형식"을 이르는 정도로 취급됩니다.
생각해보면 문화에서는 "유행이 되어 다수의 사람에게 각인된다"는 게 꼭 "자기 재생산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사람들은 계속 같은 걸 들으면 질리기 마련이니.
그런데 저는 이 개념이 정치현상을 분석할 때는 꽤 용이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재생산성이 있습니다. 한 세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많은 정치적 자원을 확보한 이들은, 다음 세대에 더욱 유리한 지형에서 싸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존과 번식의 무대가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Q.정치에서 '이기적이어서 자기복제를 거듭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진화하는 단위'는 무엇인가?
A.정치인이나 정당, 특정 사회계층은 아니다.
* 정치인 개개인은 삶의 경로에 따라 흥망성쇠를 보인다.
* 정당 역시 한 세대만 지나도 가치적 지향점이나 인적 구성이 무척 달라진다.
* 사회계층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게 제1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개체의 욕망을 따라간다.
A2.중요한 건 정치인, 정당, 정치세력에게 힘을 쥐어주는 그 무언가다.
* 이는 어떠한 생각이나 아이디어이며
* 그런 생각과 아이디어를 대표하거나 증명하는 정치인-정당-정치세력이 정치 권력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생각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자신을 재생산 하려고 하며, 또한 그 생각과 아이디어를 더 또렷하게 대표하려고 한다.
저는 이러한 요소를 대충 '정치유전자', 혹은 '밈'에서 정치(politics)의 머릿글자를 따서 '핍'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정치유전자(핍)은 '한 사회 안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결과적으로 자기자신의 재창출을 돕는 아이디어나 연관된 아이디어들의 집합'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니까 위의 정의에서 '권력을 가진 이'를 '다수 대중'으로 바꿔도 괜찮습니다.
생물체의 개체 생존 및 유전자 이송 전략은 다양하지만 일정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유전자도 몇 가지 전략을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켓몬 도감을 처음 작성하고 개체값과 속성을 분류했을 오박사의 삼정으로 적어봅니다.
(1)안티(anti-, 反)유전자
* 주요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을 근거로 번식하는 정치유전자입니다.
*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심리적 기제입니다. 규모와 시대에 상관 없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 외집단이 강할 때 해당 집단을 저격하는 안티유전자도 강해집니다.
* 외집단이 내집단을 없애지 못할 때 안티유전자는 오래 갑니다. 동시에 외집단이 오래 가야 안티유전자도 오래 갑니다.
ex1)삼국지의 반동탁연맹
ex2)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사상
ex3)조직 내에 누군가에 대한 반감
(2)친위(pro-, 親)유전자
* 권력을 가진 인물이나 세력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토대로 번식하는 정치유전자입니다.
* 마찬가지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심리적 기제입니다.
*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심리 기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 안티를 먼저 적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정서보다는 부정적인 정서가 각인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ex1) 한국정치사에서 친노, 친이, 친박, 친문 등으로 내려오는 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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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아이디어인데. 평소 생각해오던 아이디어인데, 같이 나누고 싶어서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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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유전자의 관계를 정치에 대입해볼 때, 특정한 정치인이나 정당은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어떤 가치나 사상을 존속시키고 퍼트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기저에 있는 이 가치가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주체이다, 이런 말이군요. 아마 한국에선 '산업화' 와 '민주화' 가 아마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정치유전자겠죠? 그 외에도 뭐 많겠지만요. '반공' '지역주의' '종북' '친미' 등등...
다만 한국의 경우, 상당히 오랫동안 특정 거물 정치인의 정치적 행로에 따라 지지자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성향이 바뀌던 시절(3김)을 겪었고, 현안으로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이 사실상 특정 정치인의 유산(평화적 대북정책, 지역균형발전, 검찰개혁 등 현재 정치권에서 내놓는 정책의 대부분은 노무현의 계승/보론/부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이라는 점에서 인물을 떼놓고 카테고라이즈하기가 좀 애매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인물을 따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이런 식으로 범주화하는 게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