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시 저는 지나간 이야기, 지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갈 것도 아닌, 오직 과거의 잊혀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누가한 이야기인지도 가리지 않고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다양한 종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만의 취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제 취향은 상당히 확고합니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환멸]로 가득찬 이야기'입니다.
2004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라 니냐 산타 (La niña santa, 성스러운 소녀)" 같은 작품을 저는 좋아합니다. 중년 배불뚝이 이비인후과 의사 '하노'와 만 16번째 생일을 맞은 '아말리아' 사이의 교제를 다룬 작품이었지요.
의사라는 전문직이 다 그렇지만, 열심히 살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타지로의 출장은 길어지는 인생에서,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호텔이 마침 옛 친구의 것이었고, 그 친구의 딸은 순수하며 호기심이 넘친다니요.
영화는 '하노'를 변호하는 것처럼 천천히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적극적으로 정당화시키지는 않지만, 가끔씩 카메라로 그를 어루만져주지요. 괜찮아. 유혹이라는 것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어. 이 무슨 남성편의주의적인 선전물이란 말인가요.
하지만, 두 사람의 맞닿아있는 목덜미를 마치 바람잡이처럼 선정적으로 희롱하던 감독은 갑자기 영화 중간에 손톱으로 목가죽을 긁어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핏방울이 흐르겠군요.
[정신차려, 원조교제 사범. 이제 당신의 이야기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는 관객과 의사양반의 목덜미를 잡고 '아말리아'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위안이 필요한 삶을 거창하게 살아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잘못된 욕정이었다고. 그녀의 어린 호기심이 성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신이 고작 그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는 함정에 자발적으로 빠지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등장인물도, 듣는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서술자'이지요. '서술자'는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감독'은 의사의 편을 들을 수도, 소녀의 편을 들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니면 이렇게 중간에 대놓고 편을 바꾸면서 관객의 몰입을 비웃으면서 혼자 깨어있는 척을 할수도 있고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팩트'는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일 억 개의 '팩트'를 던져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것에도 실패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고 싶다면, 이야기를 써야합니다.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 누구도 기분 나쁘기만 위해서 페이지를 넘기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도 않고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독일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에 꽃핀 '존더베크(Sonderweg)'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피땀을 흘려서 일한 근면성실한 사람의 '환멸'이 담겨있는 단어이지요.
존더베크는 두 개의 독일어 낱말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존더(Sonder)와 베크(Weg)로 나누어서 뜻을 찾아볼 수가 있지요.
존더는 특별하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영어로는 '스페셜'에 해당하겠네요. 베크는 길, 또는 경로입니다. 영어로는 '웨이'이지요.
'존더베크'란, 다시 말해서, 독일 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궤도가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확실히 독일의 역사가 좀 특이하기는 합니다. 영국 (당시 잉글랜드)도 왕국이 있었고, 프랑스도 왕국이 있었거늘, 독일은 항상 주변 국가에게 당하는 소국들의 모임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후발주자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들이죠.
1871년 독일제국이 지도에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출생연도로만 보자면, 그 어리다는 미국보다도 백살이나 더 어리군요! 태어나는 과정에서 기존 강국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한 대씩 맛깔나게 뺨을 때려보았으며,
[끝끝내 (비록 실패했지만) 세계대전을 통해 대영제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짧은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독일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이 당시 독일에서 만들어진 표현 중에는 한국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도 있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었지요. 폰 (Von)자 돌림 성씨가 들어가는 소수의 귀족-공무원들이 국가주도적으로 산업과 문화를 통제하면서, 부국강병과 산업화를 이끌고, 중세부터 내려온 소수시민의 전통을 월급쟁이가 되는 것으로 누리려는 다수의 중산층을 창조해냈습니다.
'존더베크'라는 표현의 시작은 엄밀하지도 않고 학술적이지도 않습니다. 1840년대에 자기만족용으로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표현이었지요. "우리의 위대한 역사!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그 누구와도 다른 우리만의 특수성!"
시작이 창대하였으니, 자연스럽게 독일의 몰락과 함께, '존더베크'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단어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독일의 역사! 참으로 대단하지! 다른 유럽국가와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잘못된 실패한 실험이었어!]
독일 역사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히틀러의 나치당으로 수렴해버렸습니다. 참으로 다른 나라는 이루지 못한 위업이었지요. 초강대국이 되는 것에 실패한 강대국의 국민은 광인을 지도자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지요. 냉전이 끝나고, 통일이 되었건만, 아직도 독일은 이 역사적인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이 다같이 힘을 모아서 으쌰으쌰하면 치욕말고 남는게 무엇이지?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Unsere Mütter, unsere Väter )"]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또 다른 실수로 빠지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잘 못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지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는게 문제인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황금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This was Their Finest Hour" "지금 이 때가 (우리 역사에 있어)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후대인들은 말할 것입니다.)" 처칠은 동맹국 프랑스가 항복을 선언하고, 한 달 후 런던 대공습이 시작될 순간에 이런 이상한 표현을 담은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멋진 연설은 5년 뒤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야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서 처칠만이 할수 있는 말이었다고 인정받게 되었지요.
[양복이 역사에 바탕을 두지 않는 컴퓨터 게임에서조차 멋진 이유는, 이런 멋진 역사적인 순간들이 옷에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매너는 사람을 만들고, 역사는 제복을 만듭니다. 제복을 입은 역사가 멋질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요?
저와 같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에서 캐릭터에게 옷을 사주는 취미가 있으신 분이라면,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과거의 망령과 기분 나쁘게 마주하신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제복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여러가지 규격이 있습니다. 한국인 유저들은 다만 '순사복'이란 말을 선호하지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게임 개발인력들이 전부 극우 선전물에 절여져서, 과거 식민지 국가 소속인 게이머들의 역사의식을 무디게 만들기 위한 선전선동 산업에 전심전력으로 성의를 다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에 시작된 옷 입히기일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는 그들조차도 자신의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도쿠가와 성씨가 에도 막부를 성립한 이래, 사도섬은 막부의 통치를 직접 받았습니다. 다른 다이묘를 끼지 않고요. 왜냐면, 섬에 꽤나 큰 금광이 있었거든요. [당연히 사도섬의 금광은 사도섬의 사람들로만 채굴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육지에서 사람을 납치해왔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도시빈민이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농경사회에서나 그렇지만,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무호적자는 탄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산다면 당연히, 오오... 너는 옆집 나까무라네 삼남 야스오구나 하고 단번에 알테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도시가 발달하자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도망치는 사람이 당시 일본에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속칭 '절연금'을 부모, 농촌의 우두머리, 영주에게 바치고 묵인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런 '호적 외' 사람들은 당연히 인신매매에 있어서는 아주 그냥 두발로 걸어다니는 돈덩어리였습니다. 서양에서 양복입은 관리들이 그랬듯이, 도시빈민가에서 노동자를 알선/납치 (둘의 구분은 매우 모호했겠지요)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니가타현은 계속해서 사도섬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사도섬의 금광박물관이 알려주듯이, 막부를 패배시키고 일본 최초의 근대화 정부가 된 메이지 정부 또한 사도섬의 채굴을 계속했습니다. 육지에서 사람은 계속해서 '공급'되었고, 당연히 조선인 또한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치채기 힘들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외교 갈등'과 '전시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상징성이 강조되더니, 갑자기 그 동안의 일본인 자국민 착취는 역사 속의 '정상영업'으로 위장되어 스리슬적 사라지는 것을요. 한국인이기에 우리는 이 점을 더 주목해야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다시 시계바늘을 조정해서 메이지 유신 다음 시대인 다이쇼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연도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1912년에서 1926년입니다. 한국 역사로 보자면, 일제강점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대이군요.
메이지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무조건적인 서양 따라하기는 끝났고, 이제 (일본기준) '우리의 것'의 유행이 다시 불기 시작했습니다. 조선과 대만이라는 '완충지대'덕분에, 서구 열강이 혹시나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흑선내항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전등, 철도, 공장, 전화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제복은 교복, 군복, 경찰복, 정장 등등을 타고 사회 곳곳에 퍼졌습니다. 곧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태동하기 시작한 시장경제는 호황을 거듭할 것이었고, 카레라이스, 돈까스도 이때 생겼습니다. 못 배운 촌골 출신이어도 팽창기에는 모두가 행복할 것이었습니다. 공무원/교원 시험을 봐도 좋고, 군조(부사관)이 되어 귀족 장교 밑에서 식민지에서 한 몫을 잡아봐도 좋지요.
[제국주의라는 것이 왜 사람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겠습니까?]
물론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이 시대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나면서, 호황 역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쌓여있던 모순과 약점은 사회를 압박하기 시작했지요. 단적으로, 1918년에는 속칭 '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그제서야 자기 스스로가 산업화된 국가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더 이상 농촌을 쥐어짜서는 식량수급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식계획이 시작된 이유였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불리던, 의회민주주의의 정착시도는 결국 실험으로 끝났습니다. 군부는 비대했고, 너무나도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성공만을 맛보았기에, 결국 합법적으로 선출된 총리 이누카이 츠요시를 암살해버렸거든요.
[1930년대는 대공황과 파시즘,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시대였고, 애석하게도 일본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특수적인 역사, '존더베크'는 일본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근대화 국가로 만들면서 동시에, 일본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군국주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근대화와 군국주의는 한 몸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국가는 누리지 못하고 있었고, 오직 일본만이 경험한 그 지독한 냄새는 '근대'성의 악취였습니다.
'쌀소동'에 대한 일본 근대정부의 대답은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아주 합법적이고, 아주 근대적인 해결책이었지요. 식민지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특별법이냐고요? 아니요. 일본 국내법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국내에 식민지가 포함되긴 하지요.) 일본인들이 헌병대를 만들고 자기네 땅에 설치했고, 일본인들이 경찰을 만들면 그게 순사였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본인들도 자기 체제의 피해자이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정부가 유일하게 서술자인 이야기에서, 국민에게 남겨지는 배역은 몇개나 있을까요?
["유신 체제는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는 체제입니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이야기이지요.
'계급배반'이라는 아주 정치적인 단어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고, 동시에 매우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계급배반'인지 '수저배반'인지는 해도, '자기 이야기를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자기 이야기가 오직 '박통의 경제발전 때 내가 살아있었다' 밖에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개발독재'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독재'입니다. 그리고 '독재'는 나라의 모든 것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치환하려고 하지요. 위대하신 영도자께서 태어나신게 경사요. 밥을 먹은게 경사고, 죽은게 비극이며 뭐 그렇습니다.
그곳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학적인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나라에서 그 유일하신 독재자가 아닌 불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시대에 수 많은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도주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인들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트루히요가 문란한 파티를 벌이더라, 시종이 몇명이더라, 국경 근처에 사는 아이티인들을 정글도로 난도질해서 죽이고 시체를 태우더라, 트루히요가 먹는 고급 캐비어와 와인을 내가 관리했는데... 아버지는 고문당해서 빠진 발톱이 곪아서 죽었고, 여동생은...
트루히요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처럼 부두술사였습니다. 카리브해의 독재자들이 다 그랬듯이 말이지요. 틈만나면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국민들을 저주했습니다. "나를 거르스면, 평생 내 손바닥에서 놀아나다 비참하게 죽게 만들어주마!"
트루히요는 정말로 부두술사였나봅니다. 그의 말은 심지어 미국으로 도망친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에게까지 '현실'이 되었거든요.
독재자는 모든 국민을 정치병 환자로 만듭니다. 삶을 하이재킹해버리죠. 어떤 존재가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독재자가 그 살만한 느낌을 허락해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독재자는 국가적으로 살맛이 떨어지는 밥맛 그 자체라는 말도 되지요. 암요. 어떻게 살맛이 나요? 남산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시고, 군대는 쿠데타라는 생업에 종사하고, 뉴스는 땡과 전으로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박통 이야기만 하면 이유 모를 감동에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데, 전태일 이야기를 하려고하면 아는 것도 없고, 본인하고 별로 상관 없는 극단분자인 것 같아서 공감도 안가고, 광주대단지는 하나의 폭동입니다..?
["옛날 옛적에..."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남의 영혼이 아무튼 생성되어서 남의 몸뚱아리에 들어가 있네요?]
그런데 이들에게서 독재자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빼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혼 착취'일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뒷구석 노인네라고....!"
필요한 것은 일단 그 빈자리를 채우고, 악령을 빼내는 것이겠지요. 다른 이야기, 다른 만들어진 서사가 필요합니다. '계급', '당위', '정의'같은 장삼이사 아무에게나 애정없이 가져다 붙여도 그럴싸한 '명분'말고요. 이 사람에게 딱 맞추어서 떨어지는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말입니다. 이야기.
[근대 일본에게서 제복을 벗기면 그 안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이죠?]
다이쇼 시대는 연호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연호는 당연히 덴노의 즉위만큼 긴 달력이고요. 다이쇼 덴노는 조선의 문종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치세가 길었고, 나이든 선왕의 국사를 보필했으나, 그 대가는 자신이 즉위하고 얼마 안되서 건강이 망가져 사망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이쇼 시대는 후대에 있어, 매우 편의적인 구분이 되었습니다. 추한 30년대를 보지 못하고 20년대에 덴노가 죽었으니까요.
['다이쇼 로망'이 아직도 캐릭터 상품으로, 유행상품으로, 역사극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독일 베를린의 1920년대와 비슷한 느낌이지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가기 전에, 가장 큰 갈림길 앞에 서있었습니다. 경성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언제적 개념인데요.
하지만 일본인 캐릭터들이 다시 군복을 주워입기 시작한다면 갈림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는 걸요. '이미 일어났던 일이니 거역할 수 없다'라고요. '존더베크'의 함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결국 '존더베크' 이론은 냉전 이후 히틀러가 되지 않을 자신감이 있는 독일인들에 의해서 '특수성적인 필연'을 포기했습니다. 히틀러를 독일인들이 총리로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일어난 일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일본은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소설로 만들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1920년대에 군복에 의존하지 않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서사가 있었다고 언젠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서양철학자 토니 스타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복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제복을 가져선 안 돼.]
왜 국가주의자들의 논리를 민초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놓고, 민초가 직접 변호를 해줘야합니까? 상명하복의 복장과 근대화의 복장을 가지고서도 왜 결론이 정해진 이야기에 당해주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야기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있습니다.]
가지도 않아도 되는 길을,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던 길을, 유일한 생명줄인줄 알고 붙잡고 있습니다. 징병제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습니까? 징병제를 했음에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온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로 메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유산을 잘 받았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다행히도. 제가 보기에 한국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대한민국의 수십년 역사를 집어삼켰던 부두술사 대통령들은 다시 역사 앞에선 개개인의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전해지지 못한 이야기를 우리가 더 늦기전에 회복시켜줄 차례입니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는 엄청나게 큰 경험이자 자산이지요. 필연적으로 등장해야하는 전능하지 못한 필멸자만큼이나, 이야기를 망가트리는 주범이 없습니다.
"아시아인은 개발독재와 사회적인 통제 끝에 서구보다 더 빠르게 성공에 도달했다"라는 케케묵은 논리가 있습니다.
[영화에 자주 나오죠? 동양철학을 운운하면서, 철학 따위는 사실 관심 없고 사람 쥐어짜는데 특화된 음침한 아시아인 노인네] K-POP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과연 이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남아있을까요?
아직도 존재하던가요? 일만하고 상명하복하는 아시아인 무더기라는 것이 말이지요. 21세기에는 설 자리가 없는 인종차별주의적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황인의 특성이 '독재'라고요? 정말로요?
아시아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역사가 특수적으로 글려먹었다는 파국적인 예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그게 옳았다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칠 것인가요? 정말로?
[중공은 중국의 필연이 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이라는 삼국지연의의 첫소절이 공교롭게도 '필연'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이길지 참으로 흥미로운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단지 합의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중일의 부국강병은 한번도 아름다운 이야기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는 처참하고도 기괴하게 실패하고는 하고요. 이게 우리의 '필연'입니까?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자신을 그런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집어넣고 싶지 않습니다. 빨리 자칭 우주 필연을 무찌를 어벤져스를 모아봐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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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