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철저히 주관적으로 쓰는 리뷰입니다. 그만큼 정말 간단하게 제가 느낀 점만을 전할 생각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1. 지루함?
지루하다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작 팬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간의 지루하다는 평은 별로 와닿지가 않더군요.
역으로 말해서 원작의 팬이었다면 지루함은 별 걱정 안 하고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작도 대중적으로 따지자면 지루한 영화였구요.
2. 휴머니즘
1에서 이어지는 얘긴데, 초중반부까지는 긴장감이 팽팽해서 지루하다기보단 오히려 생각 외로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케이가 목각 말을 찾아낼 때 절정을 이루던 서스펜스는 후반부에 가서 닳아빠진 휴머니즘이 되고 맙니다.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나 나올 법한 휴머니즘 감성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케이가 데커드에게 목각 말을 건네고 죽을 때의 그 묘사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그랬습니다.
잔잔하면서 애달프고, 그래서 인간적인... 뭐 그런 감성을 너무 노렸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3.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대체로 주제가 반복되는 느낌이지만, 전작과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라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래서 더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것 같은
그런 묘사와 결말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아쉬워요. 그런 점이 오히려 인간 같지가 않았거든요 저는.
가령 전작에서 리플리컨트들의 목표는 일단 표면적으론 명확합니다. 수명이죠. 달리 말하면 생의 의지인데요.
걔네들은 사실 아주 막나가는 놈들이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성 따위 개나 줘버리기 일쑤였죠.
근데 그래서 저는 걔네들이 더 인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걸랑요. 로이의 최후는 그래서 더 인상에 남는 면이 있죠.
근데 케이의 경우.. 그의 정체성이나 감정을 가지고 영화가 장난을 친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일종의 장난질이고 창작 자체가 그런 유희겠지만 좀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었네요.
예를 들어 영화는 케이로 하여금 목각 말을 찾게 하고, 그 대가로 블레이드 러너로서의 일상을 앗아갑니다.
정체성 하나를 바치고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러다가 또 조이를 덧없이 죽여버리고 케이가 애착하는 현실의 대상 하나를 또 앗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마저 응 사실 기억 날조야~ 해버립니다
요컨대 가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가면서
최후에는 케이로 하여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 즉 옳은 일을 하게끔 극을 밀고 나가는 거죠.
저는 이게 참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짜(리플리컨트)처럼 보여도 그것을 진짜(인간)처럼 애착하고, 그렇게 가짜를 추구해감으로써 진짜를 추구한다는 식..
저에게는 그게 블레이드 러너였습니다.
전작의 리플리컨트들이 그랬고,
이번 편에서 드러난 데커드와 레이첼 사랑의 진실이 그러하죠. 그들 사랑의 대꾸인 조이와 케이의 사랑 역시 그러하구요.
레이첼이 데커드를 반하게 하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존재인지는 모릅니다.
조이의 사고원리가 소비자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다고 해서 그녀의 사랑마저도 가짜인지 또한 모르구요.
디자인된 감정은 가짜일까요?
데커드의 대사처럼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겁니다.
4. 다시 돌아와서, 하여튼 영화는 케이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도록 극을 밀어붙입니다.
가짜를 모두 빼버리고 남은, 인간의 모조품일 뿐인 케이는 결국 스스로 진짜가 되기 위해 진짜스러운(인간스러운) 일을 달성합니다.
물론 데커드와 딸이 만날 때는 저도 좀 감동하긴 했지만, 케이가 죽어갈 때는.. 음... 이게 뭐하는 짓이지.... 같은 느낌이 들더란 거죠.
위에서도 말했지만 흡사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나 나올 법한 휴머니즘-너무나 전형적인 인간성, 그래서 너무나 이상적인 인간성이 나오길래 오히려 정교하게 디자인된 감정을 보는 것처럼 그런 인위적인 느낌이 들더란 겁니다.
전편에선 느껴본 적 없는 이질감, 당혹감이 느껴지더군요.
5.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는데, 저는 이런 데 알레르기 있습니다.
신파 알레르기랑 좀 비슷한 건데, 전형적인 인간애 감성을 극에서 볼 때 좀 두드러기가 납니다.
그래서 저는 왜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건 이 영화가 케이를 해탈시키기 위해 생의 집착들을 모조리 씻어낸 탓이 아니겠는가...
블레이드 러너로서의 일생도 씻겨버리고, 조이와의 사랑도 결국 단념시키고, 최후에는 진짜라고 믿었던 가능성까지 부정해버립니다.
아무래도 그 탓이 아니겠는가... 너무 깨끗하게 씻겨버리니 그런 깨끗한 인간성(저한테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는)이 나온 게 아닌가... 싶더라는 거죠.
6. 애매성. 진실의 불가능성.
일면 납득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집착할 것이 사라지니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보면 합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전편의 파이널씬이 저에게 정말로 전율적이었던 건, 정답을 딱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저는 애매성, 진실의 불가능성이 존재의 경계를 허문다고 생각합니다. 리플리컨트일 수도 있고, 인간일 수도 있고... 그런 식의 결말.
어떻게 보면 그게 픽션의 가치 그 자체죠. 허구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대안 제시 그 자체입니다.
상술했듯 가짜처럼 보여도 그것을 진짜처럼 애착하고, 그렇게 가짜를 추구해감으로써 진짜를 추구한다는 식..
저에게는 그게 블레이드 러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주제의식은 비슷해도 그걸 너무 드러내놓고 보여주더군요. 게다가 결말도 인간성이란 이런 거야! 하고 보여주는 듯한, 딱딱 정답을 알려주는 것 같은 지나친 친절함. 그런 면에선 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였습니다.
7. 간단하게 쓰려고 하면 꼭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지네요. 그러다 보면 또 무계획적으로 쓴 게 돼버려서 글이 개판입니다.
개판인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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