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7/17 14:12:13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연애 노래의 장인과 보일러의 귀재
19년 동안 연애 노래 외길인생을 걸어오며 연애 노래로 채워진 36개의 싱글과 12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왔다는 건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쯤 되면 공히 연애 노래의 장인이라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aiko의 메이저 데뷔 19주년 기념일입니다. 19년 전 오늘, 메이저 첫 싱글 あした가 발매되었습니다. 어느 공포 영화의 OST로 쓰인 연애 노래입니다. 그래요. 공포 영화라고 연애 노래를 OST로 못 쓸 건 없지요. 장인의 작품이란 그런 걸 겁니다. 생각해보니 가장 최근의 싱글도 OST로 쓰였군요. 목소리의 형태 엔딩곡, 恋をしたのは

극한을 추구하며 한 길을 걷는다. 장인의 삶이란 참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절대로 걷지 못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충동적인 편이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서 지겨움을 느끼며, 그닥 성실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편이라. 그래요, 당신처럼. 세상천지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래도 참고 가는 것이 장인의 삶이겠지요. 물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지만, 즐기는 자들이라고 해도 일이란 언제나 힘든 것일 테니까. 그걸 이겨내야 되는 건데.

얼마 전에 한 단골손님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며칠전에 퇴사했어요.' 약간 놀랐습니다. 그분의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회사와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산업용 보일러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보일러와 같은 뜨거운 기세로 얼마 전에 시공한 보일러의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중국의 자재 업체가 빠레트도 안 깔아둔 채로 컨테이너에 물건을 선적해 둔 덕에 꼬여버린 일정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고는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는 보일러메이커-미국식 폭탄주 칵테일입니다-를 주문하고는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 그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저는 일을 좋아했어요. 회사도 좋아했구요. 그래도 퇴사하고 집에서 쉬는 게 낫네요.'

아아, 장인이라는 건 무엇일까. 나는 그 손님 정도라면 언젠가 보일러의 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그도 보일러의 귀재 정도는 되어 보이고. 그가 마음을 잘 추스리고, 잘 쉬고, 다시 좋은 회사를 구하면 좋겠네요. 퇴사 의향을 내비친 순간 다른 거래처에서 구인 제의가 들어왔다니-역시, 보일러의 귀재입니다-잘 풀리게 될 겁니다. 마침내 그가 보일러의 장인이 된다면 세상은 좀 더 따듯해 질 테니까.

뭐, 또, 장인이 아니면 어때요. 19년 전의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꿈꾸었더라. 많은 것들을 잊고 포기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네요. 그래요,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살 만한 삶이면 되는 거죠. 장인의 길은 장인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오늘도 aiko의 노래를 들으며 적당한 하루를 즐겁게 견디렵니다. 모두들 오늘 하루도 내일도 이번 한 주도 이번 한 여름도 잘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시길.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7/17 14:33
수정 아이콘
헥스밤님 글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네요 크크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때 봤던 기괴한 공포영화 '하나코'에서 이상하게 흥겹고 좋았던 노래였는데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까 반갑네요
아이코가 아직도 가수활동을 하고 있었군요
즐겁게삽시다
17/07/17 16:09
수정 아이콘
19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엄청 긴 시간이겠네요.
여기 들어온지 고작 2년 넘었는데 퇴사하고 싶...
nekorean
17/07/17 17:41
수정 아이콘
저는 aiko의 best friend가 가장 좋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3011 [일반] 개기일식이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나지 않는 이유... [17] Neanderthal6888 17/07/24 6888 9
73010 [일반] 전설의 용자 다간을 다시 봤습니다. [68] style10272 17/07/24 10272 1
73009 [일반] 흡연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91] 타네시마 포푸라13128 17/07/24 13128 96
73008 [일반] 양압기, 레시틴 후기입니다.(양압기 구입 관련 내용 추가. 부모님 식당 홍보...) [110] 이리세22890 17/07/24 22890 15
73007 [일반] 임원이 각목으로 직원을 폭행한 회사 [64] 블랙번 록16919 17/07/24 16919 8
73006 [일반] 정권이 바뀐걸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18] 어리버리16349 17/07/24 16349 12
73005 [일반] 20세기에 상상한 21세기 의학. [14] 황약사9240 17/07/23 9240 3
73004 [일반] [역사] 독일인은 왜 나치를 지지했고 전쟁을 일으켰나? [39] aurelius11158 17/07/23 11158 35
73003 [일반] 2017년 상반기 일본 관광객 국가별 순위 [44] 군디츠마라13066 17/07/23 13066 3
73002 [일반] [뉴스 모음] 대통령-기업인 대화에 오뚜기 초청 외 [55] The xian12861 17/07/23 12861 16
73001 [일반] 상대방이 녹음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자유당,통화 녹음 알림 의무화 추진 [98] 크아아아13132 17/07/23 13132 12
73000 [일반] [스포주의] WWE PPV 배틀그라운드 2017 최종확정 대진표 [10] SHIELD5013 17/07/23 5013 1
72999 [일반] [미래] 비트코인은 과연 국가 주도의 가상화폐와 경쟁할 수 있을까 [180] 이밤이저물기전에15863 17/07/23 15863 18
72998 [일반] <덩케르크> - 세 가지 시간, 하나의 승리 [40] 마스터충달8426 17/07/23 8426 20
72997 [일반] 전라도 음식은 정말 맛있는걸까? [195] 자전거도둑25147 17/07/23 25147 3
72996 [일반] LG 스마트폰 사업...9분기 연속 적자... [81] Neanderthal13106 17/07/23 13106 3
72995 [일반] [뉴스 모음] 김무성의 모두까기 외 [37] The xian12419 17/07/22 12419 27
72994 [일반] 확인없이 '절도범 낙인'…CCTV 사진 공개한 슈퍼 [24] 로즈마리11012 17/07/22 11012 1
72993 [일반] 청색 작전 (4) - 체첸의 비극 [10] 이치죠 호타루6050 17/07/22 6050 11
72991 [일반] 쥬라기 공원 시리즈 역사상 최대의 논란 장면.jpg [62] 삭제됨19217 17/07/22 19217 17
72990 [일반]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분위기는 좀 더 담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59] 고통은없나9831 17/07/22 9831 4
72989 [일반] 페미니스트들과 대화를 한 후기 [80] 송아지파워12326 17/07/22 12326 7
72988 [일반] 거짓말 거짓말하기 [12] 삭제됨4369 17/07/22 4369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