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장은 대학 선배이고 사적으로도 친한사이이지만 재작년 추석이 지나고부터 노골적인 꼬리예찬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에 같이 수술을 하러 가자던 제안을 거절을 한 이후로는 더욱더 자랑을 해오고 있다.
"임 팀장, 아침에 와이프가 살랑살랑 꼬리고 깨워줄 때의 행복감을 알아?"
"그렇게 등 뒤까지 시원하게 닦을 수 있는게 얼마나 환상적인지 왜 몰랐을까."라며 매일같이 속을 긁어온다.
그래, 박차장은 친한 선배이고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이 중후한 김과장도 박차장의 꾐에 넘어가 꼬리를 달고 나타난 것은 뒤로 넘어갈 만큼 놀랄 일이었다. 얼굴에 득의만연한 모습이 조기축구회에서 헤트트릭이라도 성공한 마냥 밝았다.(나중에 꼬리 덕분에 균형감각기 좋아져 처음으로 시저킥을 성공했다고 자랑하긴 했다.)
김과장의 꼬리사릉은 날로 커져만 가서 종국에는 조금 개인적이 되어있었다. "봐! 이렇게 커피잔은 꼬리로 잡고! 일은 양손으로 하고! 시간도 절약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고 얼마나 좋아."라며 직접 시전하거나 "진급 심사에 '꼬리 없음'이라는 항목을 추가시켜야 한다니까."라는 농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업무스트레스보다 더한 유행스트레스에 짓눌린 나는 모처럼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기러 하였다. 꼬리에 유행이라고 지방에 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수적인 사람이 많겠거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행의 힘을 간과한 것인지 지방에 대한 편견이었는지 오판인 것은 금새 드러났다.
길거리에는 커플들끼리 꼬리를 꽈배기 마냥 휘어감고 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택시아저씨마저 멋들어진 금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그는 내 놀란 눈빛에도 개의치 않은 듯 날씨나 서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하차할 떄에는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던졌다.
"어이쿠, 꼬리 없는 손님 잘 가세요. 아니, 꼬리없는 젊은 사람 본지가 오래돼서 그래. 으하하하."라며 멀어졌다.
아저씨, 이제 꼬리수술이 상용화 된지 5년 겨우 지났을 뿐이에요. 오래는 무슨, 이라고 말이 턱에 차올랐지만 한숨만 내뱉고 짐으로 향했다.
"아들 왔어요."
"어 그래, 많이 막히지는 않았고?"
"괜찮았어요."
집에 들어서자 반겨주시는 어머니는 그래도 변하지 않은 고향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해주기에는 충분했다.
"먼저 절 받으세요."
부모님께 절을 올리고 용돈봉투를 꺼내드리자 예상했던 물음이 나왔다.
"그래, 결혼할 상대는 생겼고?"
"아뇨, 결혼은 무슨......"
어머니, 아들이 인기가 좀 없습니다.
부산스러운 거실의 분위기에 슬기가 나왔다.
"오빠, 안녕."
"어, 공부하느라 고생이......"
아, 너마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뿐이었다.
"짠, 예쁘지?"
슬기 말대로 갈색으로 물들이고 비드로 공들여 치장한게 예쁘기는 했다. 하지만 여동생만은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과 나는 다른 남매와는 다르게 각별했었다. 손잡고 영화보러 놀러가거나 길거리를 거닐곤 했어서 연인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취미도 비슷해서 같이 코미콘도 참가한 적이 있을정도로 서로 관심사에대해 자주 주고받는 편이였다. 하지만 유행에서만큼은 여동생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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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여느때처럼 화기애애했다. 그저 나만이 생각이 많아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듯 했을 뿐이다. 산책을 핑계대고 나온 호수공원은 다행이도 사람없이 한적했다. 호수에 오리만이 꽥꽥대며 한가한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작가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날개가 자아의 상징이라면 꼬리가 없는 나도 자아가 없는 것일까. 부평초마냥 흔들리며 나아갈 뿐이던가. 차라리 퇴화를, 자연으로 회귀를 상징하는 꼬리가 아니었더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날개였더라면 나는 달라져 있었을까 하며 의미없는 고뇌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쩐지 날개죽지가 가려워져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날개야 돋아라. 날자. 날아보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