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좋은 먹잇감이었을 겁니다. 큰 송곳니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두 다리로만 움직이다보니 속도도 많이 나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이즈가 맹수들을 압도할 만한 크기도 아니고 힘도 상대적으로 약했을 겁니다. 실제로 맹수의 송곳니 자국이 찍힌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이 발견된 적이 있는 걸로 봐서 인류의 조상들은 맹수들의 좋은 단백질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 조상들은 딜레마에 빠져있었습니다. 뇌가 커지면서 인지능력이 상승하고 나름 도구도 만들게 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 뇌가 그 대가로 에너지를 엄청나게 요구하는 것이었지요. 누가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던가요? 뇌님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드리자니 이제 고기를 먹어야 되었고 고기를 먹자니 사냥을 해야 했는데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었던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사냥을 위해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내지요.
우리의 조상들이 선택한 방법은 오래 달리기였습니다. 먹잇감을 쫓아서 먹잇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는 무식(?)한 방법이었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한낮에 뛰어야 했습니다. 이때가 다른 맹수들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무서운 포식자들이 쉴 때 그들은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조건은 오래 달리기 위해서 달리면서 몸의 열을 빨리 식힐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인류의 조상들은 이걸 위해서 무언가를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건 바로 털(毛)이었습니다. 즉, 체모(體毛)를 버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털이 없어지고 맨살이 대기 중으로 노출이 되면 뛰면서 온몸에서 땀이 나게 되고 그 땀이 증발하면서 열을 앗아가면 온 몸이 시원해지게 되는 것이었지요. 사자 같은 맹수들은 이걸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몸의 열을 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것뿐이었고 그런 시스템으로 뜨거운 아프리카의 기후에서 먹잇감을 쫓아 장거리를 뛴 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운 한낮에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이나 쳐 자다가(--;;;) 해가 지고 기온이 좀 내려가서 선선해지면 드디어 사냥에 나서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그런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뙤약볕이 쏟아지는 더운 한낮에 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인류의 조상들이 사냥하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일단 먹잇감(초식동물)을 발견하면 그놈에게 접근합니다. 그러면 그 초식동물은 포식자들(=우리 조상님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도망을 가지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또 하나 잃은 게 있다면 바로 스피드였습니다. 인류의 조상들은 속도로는 먹잇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초식동물은 빠른 스피드로 금방 우리 조상님들과의 격차를 벌려놓습니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머지않아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달리다 보니 몸에 열이 발생하고 이를 발산시키려면 쉬어야 되는데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쉬지도 않고 끈질기게 쫓아왔던 것이었습니다. 달려서 떨궈버렸다 싶으면 어느새 달려오고 있고, 이제 안 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나타나니 초식동물로서는 미치는 노릇이었을 겁니다. 결국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초식동물은 탈진해서 이제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고 말지요. 우리 조상님들이 다가오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못에 박힌 듯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뇌는 도망가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거지요. 요즘도 아프리카의 부시맨족은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의 조상님들은 언제부터 털이 빠지기 시작했을까요? 뼈와는 달리 피부나 털은 화석의 형태로 남아있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화석을 가지고는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곧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 열쇠는 바로......이......였습니다. 네, 머릿니 할 때 바로 그 이 말입니다.
온 몸이 털로 덥혀있는 포유류들은 거의 다가 다 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 포유류의 털 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이는 다 같은 한 종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인간만이 몸에 두 종류의 이가 기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카락에 기생하는 머릿니이고 또 다른 한 이는 바로 은밀한 그곳의 털에 기생하는 이(사면발이)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종류라고 합니다. 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 조상님들이 전신에 털이 수북한 수북청년단 출신이었을 때 몸에 기생하던 이는 현재의 머릿니와 같은 종류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당연히 머리에만 살고 있던 게 아니라 팔, 다리, 은밀한 부위, 겨드랑이, 배, 등, 종아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생하고 있었지요.

머릿니(왼쪽)과 사면발이(오른쪽)...서로 다르다...
그런데 몸에서 털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들은 결국 털이 남아 있는 머리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은밀한 부분의 털에 살고 있는 이는 어떻게 된 거냐?"라고 물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놈들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털이 빠지기 시작할 때 다른 동물로부터 옮겨온 놈들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자비로운 도너(donor)는 누구였냐? 바로 고릴라(!)였다는 거지요. 고릴라의 이와 우리 사람의 음모 속에 기생하는 이는 아주 비슷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두 이들의 DNA를 분석했습니다. DNA를 분석하면 이 두 이들이 언제 서로 갈라져 나왔는지 (즉, 언제 고릴라의 몸에서 인간의 음모 속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죠. 분석 결과는 약 300만 년 전에 이 둘은 서로 다르게 분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타나났습니다. 즉, 우리 인간의 조상들은 적어도 약 300만 년 전부터 몸에 있는 털을 잃기 시작했다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들이 활동하던 시기로 우리의 직접 조상이 되는 호모속이 아직 등장하기 이전이었습니다. 즉, 우리 조상들은 유인원들과는 달리 꽤 일찍부터 털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이것이 나중에 뛰어난 장거리 주자로 진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뛰어난 마라토너들 가운데 가슴털이 수북한 선수는 지금까지 못 봤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더. 이제는 뛰면서 사냥할 일도 없는데 왜 민두노총들은 자꾸 생기는 건지...이제와서 효율을 그렇게까지 올려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ㅠㅠ...
본문의 내용은 아래의 동영상을 참고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T7N5aoP48&t=183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