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치료 약을 먹이면서 재활 훈련까지 시작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당시 충주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재활센터가 딱 한 군데 있었다. 거기가 열리지 않으면 재활실이 있는 병원에서 차례가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청주나 대전, 서울 등 최소 2시간 거리를 왕복해 가며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기다리면서 버려지는 시간이 문제지 거리가 무어 문제냐 싶었다. 실제 많은 부모들이 매일처럼 이어지는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충주는 물론 어느 도시에 있는 재활센터든 문이 활짝 열린 곳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픈 아이들에 비해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불러만 주면 가겠다고 벼른 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예약만 걸어둔 채 하염없이 골든타임 일부를 소비해야 하는 게 장애아 가족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 장애 아동 가정들에서는 전국의 좋다 하는 모든 병원과 센터들에 일단 대기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전화가 오는 곳에 가서 치료를 시작한다. 저 동네 병원이나 센터에서는 대기자인 상태로, 이 동네 병원이나 센터에서 환자 자격을 얻어 불러주는 곳마다 떠돌아다닌다. 아무래도 자식의 일이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문득 스스로의 몸이 고장 날 때까지, 받아들여진다. 장거리 운전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아 애가 탔지 멀리 갈 생각에 답답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달랐다. 나는 ‘장거리 운전이 뭐가 문제냐! 어디든 가겠다!’라고 결단하는 반면, 아내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없애야 한다!’라고 결단하고 있었다. 둘의 상반된 품성이 다시 발현되는 거였는데, 이번에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내 쪽이었다.
나는 주어진 조건들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찾아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자족할 줄 아는 거고, 나쁘게 보면 수동적이다. 아내는 주어진 조건들에서 개선되어야 할 것들을 귀신 같이 찾아내, 그것을 기어이 수정해 내는 쪽으로 일가견이 있다. 좋게 말하면 능동적이고, 나쁘게 보면 피곤하다. 이 여자의 표적이 되면 그 무엇이라도 벗어날 통로가 없다는 걸 지난 십수 년 동안 보고 피부로 경험했던 난 ‘대기 시간’이 아내의 레이더망에 걸린 순간 아동 의료 업계가 곧 떠들썩해질 걸 직감했다.
첫 번째 표적은 당시 우리 가까운 곳에 딱 하나 있던 그 재활센터였다. 이 센터는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애초에 눈에 띄는 곳도 아니었다.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지도 않았고, 부모들 사이에 유명해서 입소문이 무성한 곳도 아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꽁꽁 숨어 있었다. 각종 학부모 및 장애아 관련 카페에 가입해 모든 댓글까지 모니터링하던 아내가 우연히 한 글에서 발견하면서 우리도 그 센터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대기라도 걸 수 있어야 대기 시간을 줄이든 말든 할 텐데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으니 아내 안에서 그 능동성(이라고 해두자)이 자극됐다. 처음에는 호기심의 형태였다. 지나가면서 나에게도 몇 차례 언급했다. 충주에 갈 만한 곳이 있는데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아서 진짜 있는 곳인지, 영업을 중단한 건지 궁금하다고. 그즈음 아내는 전국구로 밤낮없이 통화를 하고 있었고, 전화가 한참 나중에 연결되는 곳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난 흘려 들었다.
하루는 아내가 아들 둘과 나만 집에 둔 채, 큰딸과 팔짱 끼고 집을 나섰다. 막내 먹일 식재료 사러 가나보다 했다. 재택근무를 하던 때라 원고를 마감에 맞춰 써야 했지만, 막내가 겨우 7~8개월인 시점. 너무 어려서 둘째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막내를 등에 업은 채 일어서서 무선 키보드로 아주 느리게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너무 꼿꼿하게 서 있으면 아이가 불편할까 봐 구부정하게 서서, 아이 무료하지 말라고 적당히 바운스도 넣어가면서, 심지어 대답 없는 아이에게 말까지 간간이 걸어가면서 원고지를 채웠다. 둘째가 옆에서 그런 아빠를 보다가 실소할 정도로 극악하고 우스꽝스러운 근무 환경이었지만, 수동적인 난 자족했다.
같은 시간 능동성의 아내는 잠복근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전화를 하도 받지 않으니 센터를 찾아갔는데, 문마저 잠겨 있었다고 며칠 전에 말하던 게 ‘나 잠복할 거야’라는 뜻인 줄 나는 꿈에도 몰랐다. 친구 같은 장녀까지 데리고 갔을 정도니 그 결심이 제법 단단했던 모양이다. 두 여자는 주차장에 앉아 누군가 그 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오기를 덮어놓고 기다렸다. 전국 장애 가정의 대기 상황을 대변하듯, 눈에 불을 켜고 창밖을 주시했다고 나중에 둘은 전해줬다.
결국 둘은 그곳 원장을 현장에서 덮칠 수 있었고, 우리 아이는 충주 유일 재활센터의 자랑스러운 대기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다만 아내의 그 잠복근무가 원장을 감동시킨 듯했다. 대단한 엄마라고 아내를 치켜세운 원장님의 그 말은 현장 검거의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었던 듯하다. 우리 아이는 조금의 대기 기간을 거친 후 그곳에서 적임자를 만나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걸 상상도 못하고 있던 난 일하면서 아이 재우는 데 성공했다고 아내에게 자랑하며 인증 사진을 전송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한 문단이나 쓸 수 있었다며, 세상에 이런 남편 없다며, 좋다고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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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어린이 대상 재활병원은 자리 기다리는데 몇 개월에서 몇 년 걸리죠.
특히 유명 병원에 유명의사 있다 하면 내가 원하는 빠른 시간안에 자리 내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린이들의 가소성 때문에 골든타임에 뭘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열정으로 골든타임 안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실 수 있었으니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빌겠습니다.
글이 너무 심장을 때리고 가슴을 울려서, 그리고 그만한 힘을 가진 문장들이 나부끼다보니 작성자분의 글들이 참으로 사무칩니다.
그래도 저도 이렇게 글 올려주셔서 고맙다는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엄정한 무신론자인 제가 이번주에 20년만에 교회에 가기로 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선생님 가정의 행복을 기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