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글로 인사드립니다. 보건의료와 감염병에 대한 글을 주로 올려드리는 여왕의심복입니다.
0. 들어가면서
- 지난 4년은 저에게도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에 더해 대외 활동까지 마지못해 떠맡으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습니다. 코로나 범유행이 종식되어 조금 휴식을 생각하던 시점에 또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큰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 저는 보건의료에 대한 데이터 기반 접근이 전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은 매우 적습니다. 올해 초 대한예방의학회에서 의사 인력 추계와 현재 상황에 대한 긴급한 연구를 부탁하셨고, 거절하면 맡아주실 분이 마땅치 않아 지난 2달 간 집중적인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어제 학회 주최 공식 심포지움에서 그 결과를 공유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활발한 토론을 가졌습니다. 이 연구결과를 여러분에게 가급적 상세하게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모두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1.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문제와 그 핵심원인
(1) 지속가능성과 격차
-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가진 문제는 두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됩니다. '지속가능성'과 '격차'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장체계가 과연 10년, 20년, 30년 뒤에도 작동할까? 재정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키워드가 지속 가능성이고, 지금 '의대 블랙홀'과 '필수의료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보건의료제도의 문제의 원인이 '격차'입니다. 격차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의대를 진학한 사람과 아닌 사람에서 벌어지는 기대 수익의 차이가 첫 번째이고, 의사 사회 내부에서 필수의료를 선택한 의사와 비필수영역에 종사하는 의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차이가 두 번째입니다.
-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현상이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점차 늙어가는 인구 구조: 저출산과 고령화'입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더 아파집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최신자료를 보면 49세까지는 의료비용이 증가하지 않다가 50세부터는 매 5세마다 의료비는 약 1.3배씩 증가합니다. 이런 증가 추세는 85세에 도달해서야 감소합니다.
- 49세에는 한해 120만원 정도 들어가는 의료비용은 59세에는 200만원, 69세에는 390만원, 79세에는 560만원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경증의료이용이나 피부 미용, 근골격계 질환 진료 등이 지금 현상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이러한 연령 효과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가 평가하기로 물가상승과 경제성장을 제외할 때 우리나라에서 증가하는 의료비의 약 65%가 연령 효과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쉬운 표현으로 기술발전이나 제도의 변화 없이도 현재 우리나라 의료 시장은 연간 6% 가까이 성장합니다.
(2) 암담한 미래
- 아래 그림은 우리나라의 미래 의료 부양비 예측인데, 쉽게 표현하면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한 명이 평균 몇 명치의 의료비를 감당해야하는가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만 해도 경제활동 인구 1명은 1.3명분의 의료비를 감당하고 있고, 2040년에는 2명분의 의료비, 2050년에는 2.5명분의 의료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 이런 상황은 의료시장 자체만 볼 때 지난 20년 간 연평균 8%이상의 성장을 담보해왔습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실질 GDP는 연평균 3.4%정도 성장했으므로 4.6%p 만큼 성장의 격차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수험생이 의대 진학을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현상의 근본적 이유입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정책 도입과 사회적 변화들은 의사 사회 내의 격차도 심화시켰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급여 시장을 급격하게 성장시킨 실손 보험의 도입과 미용 시장의 급격한 발달입니다. 또한 고질적인 필수의료의 낮은 가격 정책, 나쁜 노동환경, 법적 부담등은 필수의료종사 선택을 꺼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2. 과연 의대 증원 정책은 이러한 현상을 해소해줄 수 있는가?
- 정부는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시간에 대한 단서가 존재하긴 하지만 감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으므로 2025년부터 5,058명의 정원을 가지고 2031년부터 의사 인력 배출이 늘어난다는 가정에서 미래 예측을 해보려고합니다. (구체적 방법론은 예방의학회 심포지움에서 논의가 이루어졌고 보고서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겠습니다.)
(1) 의사는 언제부터 얼마만큼 늘어나는가?
- 의사 인력은 활동 의사라는 개념으로 평가합니다. 실제 진료비를 청구하고 업무를 건강보험공단에 신고한 의사라는 의미입니다. 활동의사는 현재 정원이 오랫동안 유지될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신규의사와 은퇴의사의 수가 거의 비슷해서 의사 수의 유의미한 증가가 없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현재 정원이 유지될 경우 지금으로부터 25년 뒤 2050년에 활동 의사수는 145,000명으로 일종의 평형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구 1,000명당 기준으로는 3.1-3.4명(2050년)에 해당합니다. (아래 그림 클릭해서 보시는게 더 잘 보이십니다.)
- 반면 2,000명 증원이 이루어질 경우 평형의 시점은 2070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50년 기준으로 181,000명이되고 약 56,000명 정도 의사가 더 나오게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가는 점진적이기 때문에 증원 10년이 지났을 때에는 7%의 증가, 증원 20년차에는 19%의 증가, 증원 30년에 들어서야 약 30%정도의 활동의사 증가로 전환됩니다.
(2) 의사가 증원되면 그만큼 격차는 해소가 되는가?
- 위에서 저는 의대 선호현상이 의사와 다른 직역 사이에서의 기대 소득과 미래 기대 소득 성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의대 증원이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지 확인해보려면 추가적 분석이 더 필요합니다. 먼저 미래의 우리나라 의료 시장이 어느정도로 성장할지 예측을 해야하고, 그 다음 활동의사 1명이 얼마만큼의 시장규모를 점유하는지 확인해봐야합니다.
- 그런데 미래 의료 시장을 예측할 때는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인구구조, 경제성장, 미래 의료 기술발전, 수명 연장 등 많은 변수를 가정해야하고 논란이 많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보수적인 의료비 증가율(기술 발전, 제도변화로 의료비 증가)을 적용하고, 미래 우리 경제는 그래도 연간 1.1%p이상의 실질 GDP 상승률일 기록한다는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추계를 진행했습니다. (증원의 효과가 큰 방향으로의 적용)
- 위 그림은 미래 활동의사 1인당 건강보험 총진료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활동의사 1인당 총진료비라는 지표는 의사 1명이 점유하는 의료 시장의 규모의 총괄적 지표입니다. 의사의 노동 투입, 인건비, 업무 부하 등의 개념이 모두 녹아있는 개념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의대 증원 시 활동의사 1인당 진료비의 감소효과는 증원 10년차에 5.1%, 20년차에 14.9%, 30년차에 22,9%입니다. 의미있게 1인당 시장 점유는 감소합니다.
-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감소효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경제성장과 비교할때는 매우 높은 수준의 성장차이가 최소 25년 이상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또 이 추계가 의대 증원의 효과를 강조하는 방향임을 고려할 때 의대 선호현상은 증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3) 우리나라 지속가능성
- 의대 증원은 의사 유인수요(의사 수의 증가로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발생)를 발생시켜 의료비 지출을 큰 폭으로 늘린다는 주장도 있고, 오히려 의사 인건비의 증가 억제로 의료비 지출 감소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써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분석에도 이 내용은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나라 전체에 증원이 미칠 영향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대입 연령 당 의대 정원입니다.
- 만약 제가 제시한 자료대로 증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대 쏠림 현상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래 그림은 인구 추계를 반영한 대입 연령대 인구 대비 의대 정원입니다.
- 우리나라 미래 인구 추계는 통계청이 제시한 시나리오보다 더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증원 즉시 의대 정원은 대입 1,000명당 11.1명이되고 저위 추계를 기준으로 할 때 2040년이 되면 대입 인구 1,000명당 의대 정원은 20명을 넘게됩니다. 그만큼 우수한 인력이 더 많이 의료계에 분배되는 것입니다. 이런 미래가 과연 지속가능성이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 위 데이터로 저는 의대 증원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가 발생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효과의 크기는 미래로 갈 수록 점점 커진다는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반대로 의대 쏠림 현상이 본질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저출산 고령화를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 문제는 없다고 편하게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모두가 알고 계실겁니다. 의대 정원이 불변일 이유도 없고 미래 의료 수요에 대비한 조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조정과정이 없었기에 지금의 위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책은 너무나 급격하며, 의대 정원 조정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과도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책의 효과 크기와 발현 시점을 볼 때 그리고 다른 거시적 변화를 볼 때 원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의료와 관련된 문제는 조금 더 효과 발현시점이 빠르고, 효과의 크기도 크면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몇 번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들에게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정도의 의료접근성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양해가 필요한 시점이고, 필수의료에 재정을 더 투입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급하지 않은 부분의 공급자 측면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실손보험의 대개혁도 필요하구요. 이를 통해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해야지만 그나마 암울한 미래에서 지속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 더욱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PS. 오늘은 많은 논의에서 조금 벗어난 시각을 제시해드렸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글의 발표자료는 대한예방의학회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