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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06 11:59:35
Name 오곡쿠키
Subject [일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긍정적 리뷰(스포有) (수정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재미가 없다, 난해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지브리의 팬으로서 앞으로는 나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저는 이 작품을 나름 재미있게, 긍정적으로 감상했습니다.
 
 아래의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며, 작품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의 나름의 ‘해석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작품을 재미없게 혹은 부정적으로 보신 분들도, 아 저런 측면에서 이 작품을 재밌게 본 것이구나 하는 한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반말체,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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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이며 실존적인 이야기

 서양철학의 실존주의는 인간이 단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 자체, 죽어간다는 것 자체를 의식하고 사유하는 존재임을 통렬하게 꾸짖는다. ‘꾸짖는다’는 표현에서 누군가는 철학적 엘리트주의를 읽어낼 수도 있겠다. 확실히, 나는 실존주의가 아무리 지적인 겸손을 유지할지언정 이미 그 내용 자체로 ‘세속인’의 ‘피상적인’삶 자체를 꼬집고 있기에 사람들을 계몽하려한다는 혐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이러한 ‘계몽’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나는 실존주의적 계몽을 실존주의자 혹은 철학자의 인식론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 세속인으로서의 우리가 많은 순간 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물음을 한 번 쯤 반추하게 만드는 하나의 제안으로서 받아들인다.
   
 하이데거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은 죽음을 사유하는 존재자로서, 유일한 ‘현존재’이다. 죽음에 대한 사유, 바로 거기에서부터 생(生)이, 삶이, 실존이, 비로소 시작한다. 매순간 죽어가는 존재,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로 이러한 실존적 문제에 대한 하나의 영상미학적인 대답을 제시한다. ‘실존’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고 해서 거창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사는 존재이고, 자기 자신에 관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전적인 배경을 녹여 그 나름의 대답을 형상화하고 있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후’세대로서 자신이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를 '마히토'라는 소년을 통해 담아낸다. 소년 마히토는 공습으로 인한 화재로 어린 나이에 엄마(히사코)를 잃고, 죽음과 상실의 문제에 직면한다. 더불어, 아버지가 히사코의 동생 나츠코와 재혼함으로써 ‘새엄마’를 모시게 되는데,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마히토에게 엄마를 꼭 빼닮은 새엄마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컴플렉스적 존재)가 된다. 여읜 엄마를 꼭 닮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낳은 어머니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새엄마가 아빠의 또 다른 아이를 배고 있다는 것. 사랑하기에도, 그렇지 않기에도 애매한 대상으로서의 새엄마. 그리고 이 같은 복합적인 감정은 사실 마히토뿐만 아니라 새엄마 입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죽은 언니(히사코)의 남편과 재혼을 한 새엄마의 입장에서는 마히토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컴플렉스를 불러일으키는 것일 수 있다. 쉽게 말해 언니가 나보다 먼저 남편과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훌륭하게 키웠으며, 언니는 여전히 남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 나츠코에게 이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마히토일 것이다.
 
 어쨌든 다시 마히토의 시선으로 돌아온다면, 엄마에 대한 상실과 새엄마에 대한 복합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소년 마히토는 내적 번민과 혼란에 빠진다. 더불어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 온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마히토는 부모(엄마, 새엄마)에게도 친구(학교)에게도 속하지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마히토가 자신의 옆머리에 돌로 상처를 내는 것은 그가 겪는 내적 방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1. 마히토를 적대시하는 왜가리 : 좋은 친구는 좋은 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상실감으로 번민하는 마히토에게 치유과 극복의 동행자로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왜가리'다. 물론 기괴한 외형을 가진 이 왜가리는 결코 처음부터 마히토에게 호의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마히토는 왜가리의 감언(엄마가 살아있다)을 의심하며, 무기(활)를 만들어 왜가리를 공격하려고 한다. 그러나 왜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히토가 ‘탑’으로 거동하도록 끈질기게 도발하고 유인한다. 그런데 ‘당신의 엄마가 탑에 살아 있으니 구하러 와야한다’는 왜가리의 '도발'이자 '유혹'은, 엄밀히 말해 마히토에게 상처와의 정면대결을 요청하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히토의 마음속(탑)에서, 엄마는 ‘살아 있는’ 것이다. 죽지 않은 엄마가 탑에 살고 있으니 당신이 구하러 와야 한다는 왜가리의 도발은 당신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상처를 대면하러 와야 한다는 전언과도 같다.
 
 어찌되었건, 마히토의 입장에서 왜가리의 존재, 그리고 그 왜가리가 요청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마히토의 현 상황에 관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것’, 즉 마히토에 대해 '적대적' 성격을 띠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엄마에 대한 상실감, 더불어 새엄마와 관련된 컴플렉스는 그 자체로 마히토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적'인 것이다. 적을 대면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탑에 입성한 직후의 왜가리의 대사는 노골적이다. 왜가리는 마히토의 새빨간 심장이 모순(‘적’)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것을 잡아 먹어버리겠다고 일침한다. 나는 바로 이렇기 때문에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처음에는 적대적인 존재로서 그려지는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왜가리는, 이를테면 그 자체로 마히토가 대면해야만 하는 상처다. 혹은 그 상처를 대면하게끔 인도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왜가리와 마히토는 동행 과정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마히토의 화살은 왜가리의 부리를 뚫고, 왜가리는 계속 마히토에게 불만과 적대감을 표시한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왜가리는 마히토가 상처를 대면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의 안내자가 된다. 어느 순간 마히토와 왜가리는 서로를 적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돕는 존재로 변모한다. 상처와의 대면으로 마히토를 인도하는 왜가리는 적대와 갈등을 유도하지만, 그 적대와 갈등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치유와 극복이라는 정반합적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요컨대, 좋은 친구는 좋은 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

2. 몽상적 세계로서의 탑 : 마히토의 의식과 무의식이 형상화되는 관념적 공간


 왜가리의 ‘유혹’, 혹은 인도를 통해 다다르게 되는 별장의 ‘탑’은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마히토의 내면이 만들어낸 몽환적 구성물에 가깝다. 이곳은 마히토의 의식과 무의식이 복잡다기하게 얽혀있는 환상적 공간으로, ‘현실’의 대척점에 있는 관념적 별세계인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을 관장하는 큰할아버지는 마히토가 극복해야 할 ‘관념적 이세계’의 운명을 손에 쥔 존재이다. 큰할아버지는 상충하는 속성을 지닌 도형들(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이 기묘하게 탑으로 쌓여 균형을 이루는(모순이 모순 없이 조화하는 역설적 세계), 관념적 이데아에 가까운 세계를 주재하고 있다. 사실 마히토의 내면이 만들어낸 이 몽환적 세계는 별세계라는 점에서 ‘죽음’의 세계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이 죽음의 세계에서 마히토는 '생(生)'의 속성을 체험하고 학습한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할머니(키리코)가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 마히토에게 해체 작업을 시키면, 마히토는 물고기의 배를 가르며 피와 내장의 온도와 질감을 체감한다. 그리고 그 물고기의 피와 내장을 먹고 자란 ‘와라와라’들이 생(生)을 얻어 현실 세계를 향해 올라가는 역동(逆動)을 체험하며, 그 역동을 막아서는 펠리컨들을 다시 불(‘生’)로서 태워버리는 히미(마히토의 어머니의 어린 시절)를 마주한다.
 
 마히토가 히미를 만나면, 히미는 그를 새엄마 나츠코의 산실로 인도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마히토가 새엄마 나츠코를 구하는 여정을 떠나왔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츠코의 출산을 마주하는 것은 마히토가 자신의 ‘컴플렉스’를 직면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컴플렉스를 직면하고 극복해야, 비로소 현실로 나아갈 수 있다. 나츠코의 출산은 마히토의 이복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이며, 마히토가 이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은 나츠코와 마히토 모두에게 ‘새엄마 컴플렉스’와 결부된 복합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나츠코가 산실에서 마히토에게 ‘네가 싫다’고 발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제 이 갈등은 ‘타오름’과 ‘생’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불을 통해 해소된다. 불은 마히토가 새엄마 나츠코에 관하여, 그리고 나츠코가 마히토에 관하여 갖고 있는 컴플렉스(‘종이다발’)를 불태워버린다. 피처럼 붉게 불타는 불은 마히토의 내면에 자리한 죽음(死)의 이미지(컴플렉스)를 연소시켜, 마히토를 다시 현실(生)로 나아가게끔 인도한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죽음의 불은, 이제 다시금 마히토를 현실로 나아가게 하는 생명의 불로 전화한다.

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악의와 모순이 가득한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마히토가 탑으로 떠나기 전 우연히 읽게 되는 책의 제목은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이 책은 어머니인 히사코가 마히토를 위해 남겨둔 유산임이 밝혀진다. 영화 속에서 이 책의 내용이 묘사되진 않지만, 추측컨대 그 내용은 '생'에 관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마히토의 독서가 탑에서의 경험과 이어져, 마히토가 큰할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를(탑의 세계를 관장하기를) 거부하는 선택을 낳게 된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세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악의와 모순이 가득한 현실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히사코(엄마)가 마히토(아들)에게 물려준 '생(生)'의 유지(작중의 책 <그대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들고, 마히토는 몽환의 탑 속에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 히미를 만난다. 히미는, 마히토가 상처를 극복하고 현실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불(‘生’)의 권능을 실현한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 히미는 자신이 미래에 공습으로 인해 죽는 불행한 결말을 알면서도 마히토를 낳는 현실을 살아갈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히토를 포기하지 않는 현실을 택한 히미 덕택에 마히토 또한 큰할아버지의 관념세계를 거부하고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오게 될 수 있다(대신, 탑에서 가져온 하나의 ‘기념품’은 손에 쥔 채). 히사코(성인으로서의 어머니)의 유지는 마히토의 마음을 타고, 다시금 젊은 시절의 어머니인 히미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히미가 ‘자신의 현재’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기에, 다시 ‘마히토의 현재’가 굳건히 펼쳐질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묘한 순환성(현재가 과거로, 또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이 히미와 마히토 각자가 자신의 세계-시간 속에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더욱 두텁고 둔중한 것으로 만든다.

4. 결론 : 실존적 모티브에 대한 몽환적 형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번 작품은 결국 실존주의적 모티브를 자전적-판타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야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도 명확하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소년이 내면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다시금 현실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미야자키는 이 과정을 몽환적 상상력으로 다채롭게 형상화한다. 이 몽환적 서사의 구조는 실존적 탐구라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알맞게 조응한다. 혼란스러운 소년의 내면과 사색의 과정을 형상화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형식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영화의 '난잡함'을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인다. '난잡'해야 했기에 난잡했다. 미야자키의 이전 작품인 <바람이 분다>가 예술가로서의 자신이 갖는 모순과 직면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삶에 관한 성찰로 나아간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소년의 상실을 경유하여 삶에 관한 성찰로 나아간다. 총평하면, 이 작품은 보편성을 띠는 실존적 주제를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자전적 삶과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여 판타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필모 중 충분히 최상단에 자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인다. 작화 측면에서의 표현력, 주제의식과 형식의 조응, 인물의 여정이 결말부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의 짜임새 모두 흠 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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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루
23/11/06 12: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 일단 너무 좋았습니다. 연출, 시각, 음악 이것만으로도 만족이었고요. 13개의 돌의 의미를 저 나름대로 받아들였는데, 그부분이 전 기억에 많이 남네요.
오곡쿠키
23/11/06 12:48
수정 아이콘
혹시 13개의 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도 본문처럼 좋게 보기는 했지만, 해명이 잘 안되는 떡밥들이 많기는 했습니다(이런게 저평가의 원인이 되기도 히겠죠). 13개를 별 생각 없이 넣은 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작품이야 해석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그걸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다소 궁금합니다.
카오루
23/11/06 13: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심플하게 미야자키가 단편이나 뮤직비디오 같은거 말고 감독으로 제작한 극장판이 13개라서(나무위키발) 본인이 늙어서 마지막 순간에 평생을 거쳐서 만든 13개의 작품을 (작 중 오랜세월을 거쳐서 찾은 13개의 돌)말하는 거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부탁하는 걸로 받아들였죠...
볼때는 숫자가 잘안맞을 수도 있는데, 외압없이 본인의 뜻대로 만든 작품만 센건가? 했는데 나와서 찾아보니 얼추 작품수가 맞더라고요.
오곡쿠키
23/11/06 14:06
수정 아이콘
13에 그런 의미가 담겼을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앵무새 장군이 그 돌로 탑을 쌓아보려하지만 균형을 잃고 무너져버린다는 건, 자신의 작품이 단지 '별세계나 공상'을 구축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의 모순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타쿠'를 비판하던 논조, 그리고 그가 작품활동 내내 드러내온 문제의식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짐바르도
23/11/06 12: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 영향 받았겠지만 저는 보면서 융 심리학이 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23/11/06 12:50
수정 아이콘
리뷰 잘 봤습니다.
전 영화 보고나서 소년과 왜가리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개봉명 변경하신분 1따봉 드리고 싶었네요. (플라워 킬링문과 정반대..)
영화 자체는 괜찮게 보긴 했는데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불친절한 영화는 맞다고 봅니다.

영화 보기전에 킹무위키든 어디에서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생애에 대한 배경지식은 보고 가면 더 좋은 관람이 가능할것 같았고
중간중간에 이스터에그도 꽤 있어보였고 지브리 덕후면 덕후일수록 영화가 더 맘에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23/11/06 12:58
수정 아이콘
아 원래제목은 소년과왜가리군요..
바뀐제목때문에 사람들이 더보는거같네요
더 기대하고보고
오곡쿠키
23/11/06 13:09
수정 아이콘
원제는 '그어살'이 맞는데, 영문 제목이 '소년과 왜가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곡쿠키
23/11/06 13:08
수정 아이콘
왜가리의 존재가 중요한만큼 '소년과 왜가리'라는 영어 제목도 말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제(그어살)가 더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스즈키 토시오의 내한 인터뷰나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봤기에(저는 <바람이 분다>도 괜찮게 봤었거든요) 더 무리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브리의 덕후까지는 아니지만..무튼 그렇습니다.

동석했던 지인은 상징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고 혹평했는데, 불친절한 영화라는 평가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불친절이 꼭 작품성과 연결되느냐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테죠. 가령 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다소 '불친절'하고 엉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작품은 불친절했을지언정 엉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23/11/06 13:28
수정 아이콘
저도 소년과 왜가리 제목도 괜찮지만 영화가 큰 틀에서는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저에겐 와닿았어요.

저 같은 경우는 아예 배경지식 없이 갔는데 (지브리 작품은 나우시카, 토토로, 붉은돼지, 월령공주, 하울, 센과치히로, 바람이분다 봤네요)
영화 보고나서 하야오 감독 생애를 보고 나니 그제서야 이해되는 메타포들이 있어 재밌었습니다. 감독님이 무얼 이야기 하고싶어 했는지도 더 분명해지고요.

엉성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들을 어색하지 않게 잘 담았다고 보는지라..
23/11/06 12:54
수정 아이콘
극장서봣는데 저같이 평범한사람은어렵더라구요
그치만 좋았습니다 음악이나 연출도 좋고
어려운건 리뷰찾아보면되고
거장의 마지막작품을 극장에서 봐서 의미있다생각중입니다
타카이
23/11/06 13:02
수정 아이콘
마지막 아닌데요..
23/11/06 16:15
수정 아이콘
마지막이라들었는데
잘못알고있었나보네요
23/11/06 13:17
수정 아이콘
저도 좋게 봤네요
넷상에서 말하는 불친절하다는 것도 딱히 동의가 안되고
그냥 하야오 영화스러워서 좋았습니다
사브리자나
23/11/06 13:39
수정 아이콘
악역들이 새인 것도 인상깊었습니다. 새는 많은 문화권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고차원적이고 신성한 존재며 왜가리나 펠리컨 등은 물새여서 수중세계와도 연관짓기도 하죠.
그런데 저승세계와 현실의 순환을 긍정하면서도 저승에 안주하는 것을 부정해버리기 위해 새들을 악역으로 삼고 식인종에 멍청한 파시스트 장군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백도리
23/11/06 14:00
수정 아이콘
고찰력 문장력이 좋으시네요. 전 자서전적인 얘기인지도 모르고 지브리나 포뇨쿠스투디오면 걍 보고가자 성미라 타성으로 보고 아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같은건데 거기에 가족애와 전쟁상을 곁들인 이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려요
23/11/06 14:04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 리뷰네요. 본문처럼 씹고 뜯고 즐길 매력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나 저는 깊은 해석 없이도 그 자체로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올해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흥행으로 중소규모 일본 극장판 애니들이 많이 수입된 편인데 이 정도 퀄리티의 애니는 아무래도 흔치 않죠. 불만족 하신 분들은 아무래도 지브리 애니에 기대한 바와 달라서 그랬을 거고요. cgv에그지수도 초반엔 깨졌다가 지금은 복구가 되었더라구요. 아무래도 하야오 찐팬은 이제 한창 사회생활을 할 나이라 뒤늦게 영화를 관람한 분도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 템포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 제 생각에 하야오는 작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관객을 세 시간 동안 앉히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창작자라면 누구나 자전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게 영화 전반부에 더 드러났다고 봅니다.

저는 올초 개봉한 스필버그 영화가 계속 생각났는데 거장이 흥행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도 그랬지만 백발의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엄마는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또 다른 울림이 있어요. 하야오가 자신의 어머니를 추억하며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면 숙연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싸우지마세요
23/11/06 16:32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S57HCigXvUU
저도 나름 재미있게 관람하였고 후에 이 리뷰가 인상깊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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