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겠지만 혈액형별 성격 이런건 다 헛소리다. 눈으로 볼수도 없는 피 안의 인자 때문에 성격이 결정된다는 건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이야기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혈액형은 ABO가 됐어야 했다. 나는 A형의 소심함과 B형의 변덕스러움 O형의 고집 AB형의 지나친 자기애를 모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완전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신같은 이야기도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리게 되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게 되기 시작한다. 뱀띠여자를 만났는데 소유욕이 정말로 강하다던지 3살 차인데 궁합을 볼필요가 없다던지 너무 예쁘다 했는데 알고보니 셋째딸이라던지 이런 경험 말이다. 이런 미신같은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역시 경험만큼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는 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롤 캐릭터에 따른 성격유형도 이와 비슷한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경험에 따라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있는 유저의 성격을 판단하게 된다. 리븐 유저는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블리츠 유저는 칭찬만을 바라는 칭찬충이고 이런식으로 말이다. 물론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상냥한 리븐유저 과묵한 블리츠유저가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경험을 통해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리븐 유저는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블리츠 유저는 칭찬만을 바라는 칭찬충이고 소라카 유저는 잔소리가 심하다는 것을 말이다.또한 생득적인 띠나 혈액형과는 달리 롤은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고르는 방식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고르는 성향에 따라 경험에 비추어 유저의 성격을 판단하는것이 어느정도는 더 일리가 있다.

물론 아무리 포장을 해도 이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편견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이 단지 나쁘게만 작용하는것은 아니다. 이런 편견이 어느정도 게임을 조율하는데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정글을 플레이할때 탑이 리븐이라면 3렙갱을 가는편이 좋다. 소라카가 공격적인 채팅을 치기 시작한다면 차단하는 것이 좋다. 블리츠가 그랩을 성공했다면 칭찬하는것이 좋다. 앞서서의 나처럼 여러분도 여러번의 롤 경험을 통해 구축한 이미지가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쁜 이미지의 챔피언과는 달리 좋은 이미지를 가진 챔피언도 존재할것이다.
나에게는 잔나가 그랬다. 아니 그랬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랭크게임에서 만난 잔나들은 대부분 착했다. 그렇기에 나는 잔나에게 원딜이 실수해도 위로하고 팀원을 성심성의껏 서포팅하는 천사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날 만난 잔나도 평소와 다를바 없어 보였다. "여러분들 힘내서 이겨보죠. 화이팅해요. 으쌰으쌰" 채팅도 예쁘게 하는평상시 가지고 있던 잔나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이변은 게임이 시작되고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일어났다.

"아 잔나 미친xx야  cs좀 치지말라고"

"죄송죄송. 근데 라인이 계속 밀려서 치는거에요. 근데 코르키가 캐릭이 많이 안좋네요. 놓치는 cs가 넘 많네."

나도 서폿을 하면서 cs를 건드리는데 유독 민감한 원딜러들을 평상시 많이 보아왔던 터라 잔나에 대한 동정심이 일며 6레벨을 찍고 봇을 한번 찔러줘서 코르키의 마음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6을 찍기위해 정글링을 열심히 하고 있는 찰나 코르키가 다시 한번 잔나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잔나 회오리 왜 쓰냐고. 차라리 가만히 좀 짜져있어."

"흑흑 아니 코르키님 왜 이렇게 욕을 하세요. 차단할게요."

차단이라는 좋은 방법을 선택한 잔나에게 찬사를 보내며 나는 봇을 향해 다소 늦은 갱킹을 시도했다. 큐큐 와드방호에 이어지는 궁점멸.
몇판 해야 한번  나오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깔끔한 콤보였다. 그런데 그 때 나의 궁배달이 무색하게도 잔나는 칼같은 궁을 써서 상대방을 방생해버렸다.

"???잔나님??"

"흑흑 죄송 궁이 스마트키 되있어서;;"

아니 궁이랑 스마트키랑 대체 무슨 상관이지? 잔나도 당황해서 아무말이나 주워섬기는구나 생각하며 아쉽지만 내가 잔나를 탓하면 코르키의 공격이 두세배 더 강해질것이고 장기적으로 득될것이 없음을 알기에 채팅을 삼갔다. 그렇게 분루를 삼키며 탑 동선을 향하고 있는데 코르키가 다시 한번 화를 냈다. 이번엔 전체 채팅이었다.

(전체) "야 우리 잔나 cs그만좀 치라고 좀 해라 미쳤냐 진짜"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탭버튼을 눌러 보았다. 잔나가 타곤산을 갔을리도 없는데 기이하게 cs가 많았다. 그러한 나의 의문을
상대 자이라와 잔나의 전체채팅이 해소해주었다.  

자이라: "잔나 이 xx. 전판도 그렇더만 또 트롤하노?"

잔나: "걸렸다 이기야"

그렇다. 문제는 혈액형도 아니고 띠도 아니고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바로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