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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1/13 11:49:39
Name 점쟁이
Subject 발버둥
'왜?'

조규남 감독은 터져올라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뱉을 뻔했던 말을 간신히 참았다

내뱉는 순간 두사람의 관계는
믿고 의지하는 동료에서
일반 감독과 일반 선수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최근 떨어지는 경기력에 대해서
잘 할 때도 있는 거고 못 할 때도 있는 거라며 인터뷰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도 최고였던 경기력이 회복되지 않는 것에
본인도 갑갑하게 느끼고 있다는 게 더 문제였다

gg 선언 전에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던 마재윤이 분노를 감추지 않고 커텐을 제치던 그 날
해줄 수만 있다면 주변에 농락하거나 비난, 도발하는 모든 이들을
다 때려눕혀주고 싶었다



마재윤이 물에 빠졌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가까이 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워낙 수영을 잘했던 사람이라
조감독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았는가?
물에 빠져 보았는가?
필사적이란 말이 왜 있는지를 절감할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정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그런데 마재윤은 발버둥 치고 있지 않았다

수영하는 법을 잊었을 리 없다
몸이 굳은 것도 아니다
위기의식 속에 수영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생각이 몸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라고 조감독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마재윤은 물에 빠진 걸 몰라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든 선수들을 사랑했고
모든 선수들을 믿었기 때문에
선수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조감독의 방침이었다

어리다고 말하지만
모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청년들

고맙게도 선수들은 스스로 선수답게 행동했고
선수의 자리를 지켜주어
조감독을 감독답게 만들어주었다

언제나 감독의 역할이란 짐을 지고 있지만
조감독은 그들과 자신의 관계는
선수와 감독이 아닌
철저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동료라고 믿었다

흔들리는 선수들을 볼 때마다
여린 선수들을 감싸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방침이 흔들렸던 건 사실이지만
터치하는 그 순간,
더이상 동료 관계를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소리쳐 알려주면 간단했다

"너 물에 빠졌어, 임마!"

워낙 수영을 잘 하니까 알아서 헤엄쳐 나올 것이다

혼자서 헤엄쳐 나와 배시시 웃으며

"에이~ 감독님 설마, 제가 물에 빠진 것도 모르고 죽을 줄 알았어요?"

…라고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조감독은 소리칠 수가 없었다

여러번 우승을 거머쥔 자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없다고?
팀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었던 공로가 있다고?

'웃기지 마라, 내게는 소중한 동료다'

조감독은 우린 동료라는 신뢰를 소리쳐 깰 수 없었다

마재윤이기에 스스로 깨닫고 헤엄쳐 나오리라 믿었다
수없이 많은 고난과 위기를 혼자서 극복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물에 빠져 죽는 걸 구경만 할 것인가?

적어도 빠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게
지푸라기라도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조감독님, 이제 에이스 명단 제출해주세요"


변형태, 서지훈, 한상봉, 김성기
선수들의 얼굴이 한명씩 스쳐지나갔다

승리? 간단했다

상대팀의 에이스는 예상 90%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카드도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조감독에게 있어선 그 카드를 꺼낼 수 없었다

이렇게 이기면 감독으로 있는 한,
아니, 감독이 끝나고도
두고두고 후회가 될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조감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꾸미며
지푸라기를 강물에 던졌다



"재윤아, 해보겠니?"

"바라던 바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마재윤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것에
조감독은 내심 불안해졌다

'이번에도 지면 재윤이는…'

조감독은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다음 말을 꺼냈다


"중요한 경기이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이기면 물론 좋지만 지더라도"

조감독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재윤이 잘라버렸다

"아니요. 이번에도 지면"

"됐다, 나가라"

조감독은 다음 말이 나오지 못하게
얼른 그의 말을 다시 끊어버렸다



'옷을 벗겠습니다'

나가라 한마디로 모든 걸 대변해주는 그와 조감독의 관계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만들다니…

'난 저질이구나'

조감독은 후회막급했다



손바닥의 대화

강하게 마주친 손바닥을 통해
마재윤의 의지가 조감독에게 전해져왔다

원래 친해지면 친해질 수록 말이 없는 법
얘기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이번엔 조감독의 손바닥이 아프도록 저려왔다


'이젠 날 못 믿는 건가요?
난 이겨요
반드시 이겨요!'


조감독은 심정을 들켜 뜨끔하면서도
마재윤의 필사의 의지를 느껴 한편으론 기뻤다

'깨달았구나'



얼핏봐도 비슷한 저글링 숫자와 발업
몇대 맞은 저글링 한두마리 만으로도
결과는 큰 차이를 내긴 하지만
언덕과 적진 코 앞이란 불리한 점은
절대 메울 수 없는 구멍, 넘을 수 없는 벽,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재윤의 저글링은 벼랑을 기어올랐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란 각오로


그리고 저글링 교전이 붙기 전
불리한 상황임에도 조감독은
마재윤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마재윤 대 박명수

두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필사적이란 단어

마재윤은 살기 위해
지푸라기를 쥔채 발버둥 치고 있었고
그의 저글링들은 떨어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벼랑을 기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았는가?
물에 빠져 보았는가?
필사적이란 말이 왜 있는지 알고 있는가?

물에 빠진 사람의 필사적인 발버둥은
설령 항우가 와도 견디지 못하는
살아있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가장 높은 자리는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 결국 내려와야만 하는 게 운명

최고가 된 순간 할 수 있는 거라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내려오기 위해
다만 발버둥 칠 뿐이란다

하지만 내려오게 되더라도 실망은 말아라

네가 발버둥을 치는 한
그 자리는 어느새 다시 오를 수 있으니까

사랑한다 재윤아

==================================================================
당연히 급작 날림 소설입니다;
관계나 상황, 방침 이런 거 전혀 모르고
실제 인물 및 관계 등과 아무 연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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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vovo
08/01/13 11:52
수정 아이콘
소설임을 알면서도 울어버렸습니다. 아아 마재윤선수..
08/01/13 12:03
수정 아이콘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소설이었네요.
마재윤선수의 팬으로서 참 멋진 소설 읽고갑니다. 정말 멋지네요.
08/01/13 12:05
수정 아이콘
'장자'를 읽는 기분이군요.
08/01/13 12:13
수정 아이콘
오~~ 한편으로는 민망하지만

마빠로서는 역시
멋지다는 말 밖에...
08/01/13 12:38
수정 아이콘
이야~ 정말 멋진 글..
초보저그
08/01/13 14:11
수정 아이콘
솔직히 어제 경기를 보면서 준플레이오프 MVP는 마재윤 선수가 아니라 조규남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을든저그
08/01/13 16:30
수정 아이콘
멋진글이네요. 마재윤선수가 이런글 보고 다시 힘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피부암통키
08/01/13 17:34
수정 아이콘
마재윤 선수의 에결출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 픽션.. 멋집니다
08/01/13 23:07
수정 아이콘
저는 발버둥이란 표현보다는 전장의 선봉장이 일기토를 앞두고 느꼈을 엄청난 부담감...자기자신에 승부하나로 모든것이 결정되는 압박감..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한 순간 ,,안도감과 해방감.. 짜릿한 기쁨의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까진 전 마재윤이 "발버둥"이 필요할 정도로 나락에 떨어졌다는 생각까진 안들거든요.. 그는 여전히 현재 스타리거입니다. 발버둥은 나락까지 추락해서 끝이 안보이는 암흑속에서 허우적 댈때 나오는게 아닐까..딴지 아닌 딴지 걸어 죄송합니다. 글은 흥미진진하게 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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